스페인 친구가 방문해 집에 묵으며 추석을 같이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명절을 맞아 모인 친척들의 호칭을 설명하는 일이 여간 힘들지 않았다.
오촌 당숙, 매형, 처제 등등 우리나라의 촌수 때문이었다. 그는 왜 좋은
이름을 놓아두고 다른 명칭으로 부르는지 궁금해 했다. 우리 고유의
가족문화에 대해 설명해주긴 했지만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 가운데 하나는
상대방을 어떤 명칭으로 불러야 하느냐는 것이다. 동시에 상대방이
자신을 부르는 호칭도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김씨' '김형'
'김선생' '김선생님'이 다르고, '사모님' '아주머니' '아줌마'
'돌이 엄마'가 다르다. 대화의 내용보다는 호칭 때문에 기분이 상하고
시비가 붙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끼리는
명함을 건네 호칭에 대한 조율이 이루어진 다음에야 편한 대화가
시작되곤 한다. 이는 영어의 '유(you)'나 스페인어의
'우스뗏(Usted)'과 같은 뜻을 가진 우리말 인칭대명사의 의미가 폭넓게
수용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너'라는 말은 자칫 무시한다는 오해를
부를 수 있고, '당신'이라는 말은 서로 시비가 붙을 때 흔히 쓰이는
호칭이다. 때문에 '저기요…'라는 정체불명의 말로 상대방을 부르거나
아니면 아예 입을 다무는 것이 상책이다.

한글은 음성학적으로 구강 구조를 100% 활용할 수 있게 만든 완벽한
언어이다. 그러나 일상 생활에서 편하게 쓰일 수 있는 호칭, 그리고
직함에 얽매이지 않는 친근한 이름의 사용은 우리말을 좀더 아름답게
만들고 권위주의적 문화에 물든 우리 사회를 밝게 해주지 않을까?

(신정환·한국외국어대 BK21계약교수·중남미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