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의 행진에 급제동이 걸렸다. 지난 13일
개봉한 장선우 감독의 대작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 빚은
사태다. '한국 영화 사상 최대의 제작비'라는 111억원을 쏟은 이
영화는 '한국영화 사상 최대의 흥행 참패'를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추석 연휴 기간을 포함해 22일까지 '성냥팔이…'의 전국 관객은 불과
14만명(홍보사 알앤아이 애드벌룬 추계). 제작비 규모로 보아 전국
250만명은 동원해야 간신히 손익분기점에 이르는데, 이런 추세라면 전국
20만명을 넘기기도 힘들 것이라는게 충무로 예상이다. 99년 '쉬리'는
30여억원을 들여 200억원을 벌어들였는데 이보다 3배이상의 제작비를
쏟은 '성냥팔이'는 무려 100억여원을 손해보게 됐다. 2002년
한국영화계는 임권택 '취화선'의 칸 감독상 수상과 이창동
'오아시스'의 베니스 감독-신인배우상 수상이라는 예술적 성취의
기쁨이 채 식기도 전에 참담한 산업적 실패를 착잡하게 응시하게 됐다.
왜 이렇게 됐을까. 영화기획자 김익상씨는 이렇게 말했다.

"한마디로 대다수 관객들에게 '재미 없었기' 때문이다. 자장면 배달
청년이 게임속 소녀와 사랑에 빠져 그녀를 구출하기 위해 대결한다는
구도부터가 관객이 블럭버스터에 기대하는 만큼의 흥미를 지닌 설정이
되지 못했다. 게다가 곳곳에 도사린 불교적 깨달음, 장자의 호접몽 등에
관한 장감독의 '주관적' 표현들이 관객들 머리를 복잡하게 해 영화
즐기기를 방해했다. 20억 정도의 저예산으로 만들 이야기를 100억짜리
규모에 얹으려다 일이 꼬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설명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중견 감독의 역작이고 대작영화의 스케일이 있는데, 실패는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 개봉 전까지만 해도 "대작 액션의 기본적 재미가 있는데
손해야 보겠느냐"던 장선우 감독은 개봉 결과를 접하곤 "100억원짜리
큰 보시한 셈 치자. 적어도 금강경을 세상에 알리지 않았나"라고
말했다고 튜브엔터테인먼트 측이 전했다.

왜 이렇게 외면당했을까. '성냥팔이…'의 투자사이자 실질적으로
제작을 지휘한 튜브엔터테인먼트의 김승범 대표는 착잡한 표정으로
'관객들의 반란'이란 측면을 이야기했다. 그는 "99년 '쉬리'로부터
시작해 2000년 '공동경비구역JSA' 그리고 '친구'로 이어지는
한국영화 대박 행진속에서 자신감에 차다 못해 '기고만장해진'
한국영화가 관객들을 향해 '자 우리 영화, 이렇게 호화찬란하게 물량
쏟았다'고 자랑하며 대박을 확신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데 대한 관객들의
반발까지 가세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김대표는 "그간 '한국형
블럭버스터' 들이 쌓아온 잘못의 댓가가 이번 한 편에 터진 측면도
있다"고 했다.

할리우드 영화 못지않은 대규모 총격 폭파 액션 신이 이어지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의 한 장면.그러나 영화의 완성도와 이야기의 재미 면에서 대중들의 공감대를 얻지 못한 영화에선 스펙터클도 관객들을 흡인하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2002년 들어 60억원 이상을 들여 내놓은 블럭버스터들의 참패
행진이 '성냥팔이…' 이전에 이어졌다. 한 영화 기획자는 "영화
'예스터데이'가 충무로에 카운터 펀치를 날리더니, '아 유 레디'가
산소호흡기를 달고 연명하게 했고, 이번의 '성냥팔이 소녀…'참패는
산소호흡기마저 떼어내 심장이 멎게 한 셈"이라며 "이제 남은 것은
심폐소생술"이라고 빗댔다.

99년 '쉬리'이후 한국영화의 산업적 대안처럼 여겨져온 블럭버스터들의
전략을 근본부터 새롭게 가다듬어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가뜩이나
찬바람이 돌던 영화 투자 분위기는 이번 '성냥팔이 소녀…' 참패로
꽁꽁 얼어붙었다. 단적으로 30억원이 넘어가는 영화에 대해서는 투자를
꺼리는 분위기다.

영화마케팅 전문가인 채윤희 올댓시네마 대표(여성영화인 회의 대표)는
"'쉬리'엔 '우리도 할리우드 버금가게 해냈구나'하는 대견함이
있었고 '공동경비구역JSA'엔 분단상황에서 생각해 볼만한 꿈이
있었다"면서 "매력이 없는 소재를 대규모 예산만으로 무모하게
밀어붙이면 안된다는 교훈을 이번에 얻은 셈"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