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노무현·정몽준씨 등 주요 대통령 후보들은 지금부터라도 역겨운
비방전 대신 미래에 관한 논쟁을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국민들은 석달 후 각 후보의 청사진과 비전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
채 막연히 만신창이가 된 몇 사람 중 한 사람을 다음 대통령으로 뽑아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판이다.
그럼에도 오늘의 대선정쟁은 이런 주문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이번
대선을 '정책대결'로 치르겠다던 다짐이 사문화된 지 이미 오래이고,
대통령 후보와 그 주변에서 들려오는 것이라고는 '…풍(風)'이니
'…설(說)'이니 하는 죽기살기 막싸움뿐이다.
석달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겨냥해 대통령 후보들은 최근 제각각
선거진용을 정비하고, 국민을 향해 출사표를 던졌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저 사람이면 마음놓고 나라를 맡겨도 되겠구나'하는 압도적인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이들이 시대가 요구하는 국정구상과 비전,
복잡하게 얽힌 현안들에 대해 가슴을 치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후보들은 지금까지 여러 기회를 통해 자신들의 구상을 밝히긴 했다.
그러나 이런 발표들은 대개 당시 정치권을 달구던 정쟁과 의혹의 탁류
속에 파묻혀버리곤 했다. 언론의 책임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어차피
한국대선의 승패는 정책이 아니라 세(勢)규합과 정적(政敵) 죽이기에
달려있다는 해묵은 구태(舊態)가 가장 큰 이유였다.
이제 이런 '더러운 전쟁'을 탈피할 때가 됐다. 대통령 후보들과 그
진영은 기회 있을 때마다 욕설경쟁이나 모략중상 대신 나라의 미래상에
대한 구상을 밝히고, 그 구체화된 '어떻게?'를 내보여야 한다. 이번
대선마저 '노선대결'이 아닌 증오와 저주와 음모의 백병전(白兵戰)으로
일관한다면 우리는 민주주의를 할 자격이 없는 나라임을 자인하는 꼴밖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