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서 '잘 나가던' 친구가 직장을 나와 사업을 시작하더니 세상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한다. 사업을 위해 트럭을 운전하는데 높이가 다른
운전석에 앉아서 보니 승용차에서 보던 세상이 아니더라는 것이다.
사소한 일상의 변화 덕에 좀 더 넓은 세상을 얻게 된 그의 말에 동감하며
외국어 교육의 의미도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한 문화가
압축되어 있는 언어의 습득은 궁극적으로 그 문화를 배우는 것이고, 다른
문화를 배운다는 것은 내 마음에 또 다른 창문을 다는 일이다.
궁극적으로 그것은 나를 개방시키는 세계화 작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정상적인 영어 열풍은
맹목적인 미국화일 뿐 참다운 세계화와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발음을
좋게 하기 위해 자녀들의 혓바닥 밑부분을 절개시키는 부모들도 있다니
딱할 뿐이다.

10개 국어 이상을 구사하는 외국인 학자를 학회에서 만나 외국어를 잘
하는 비결을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모국어를 잘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백 번 옳은 말이다. 우리말로 생각하고 표현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외국어를 잘 할 수 있을 것인가?

지난 해 문화관광부가 실시한 검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국어
실력이 100점 만점에 29.8점으로 6년 전보다 40%나 떨어졌다고 한다.
며칠 전 보도를 보니 중학생 국어 교과서에 1000건이 넘는 맞춤법 및
띄어쓰기 오류가 있다고 한다. 게다가 갈수록 늘어나는 외래어, 인터넷의
외계어, 대중 매체의 비속어 등으로 우리 한글은 하루가 다르게
상처투성이의 공작새 모습이 되고 있다. 아직 세계화는 요원하다.

(신정환·한국외대 BK21계약교수·중남미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