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프랭트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를 자주 부르곤 했다. 그
계기는 75년인가 국내 선보인 동명의 영화였다. 별로 언급할 가치 없는
범작이란 걸 훗날 알았지만, 당시 난 그 범작에 무척 큰 감동을 받아
한동안 그 속에 빠져 지냈다. 퍽 감상적이며 교훈적인 영화에 그토록
빠져든 까닭은 영화에 묘사된 아버지의 모습 때문이었다.

'아메리칸 뷰티'의 샘 멘데스 감독이 찍은 톰 행크스 주연의 '로드 투
퍼디션'을 보고 적잖이 감동한 것도 무엇보다 그 때문이었다. 자연스레
'마이 웨이'가 떠올랐고, 영화사상 가장 유명한 가족 드라마인
'대부' 시리즈가 떠올랐다. 아버지와 아들 간의 관계를 다룬 영화들
중, 내 기억에 자리하고 있는 몇몇 작품들도 고개를 내밀었다. 채플린의
'키드'를 비롯해, '아들의 방','존 큐','못다한 27번의
키스','매그놀리아', '정복자 펠레','마르셀의 여름'….

에덴의 동쪽

그 기억의 목록 정상을 차지한 작품은 하지만 '에덴의
동쪽'(1955·엘리아 카잔)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주제곡 선율과 더불어,
반항과 우수에 찬 칼(제임스 딘)의 눈빛을 도저히 잊을 수 없는 미
영화역사의 명작. 성서 속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존
스타인 벡 원작을 극화한 영화에서, 칼 트래스크와 아버지 아담
트래스크(레이몬드 머시)는 애증으로서의 부자 관계를 극히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전적으로 떨쳐내야 할 대상도, 본받아야 할 대상도 아닌
아담은 이름이 시사하듯, 원초적이며 복합적인 아버지 상(father
figure)을 구현한다.

그에 비하면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대표작 '자전거
도둑'(1948·비토리오 데 시카)의 아버지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다.
동반자로서의 아버지상이랄까. 여느 영화들과는 달리 둘의 관계는 극히
평등하다. 그 흔한 세대간 갈등 따위를 찾아볼 수 없다. 생계 수단인
자전거를 도둑맞은 뒤, 부지지간이 나란히 자전거를 찾아다니는 과정에서
주체할 수 없는 슬픔과 감동을 동시에 느낀다면 그래서일 터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아버지 상은 위 두 아버지들은 아니다. 그
상을 나는 3위작 '보이즈 앤 후드'(1991·존 싱글턴)에서 발견한다.
1990년대가 낳은 걸작 블랙 시네마에서. 여전히 인종차별적인 미국
사회에서 흑인으로 생존하기가 얼마나 힘든가를 반성적으로 보여주는 이
영화에서, 트레(쿠바 구딩 주니어)의 아버지 퓨어리어스 스타일즈(로렌스
피시번)는 맹목적이기 십상인 여느 아버지들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균형 잡힌 부성을 구현한다. 그는 아들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려
무던히 애쓰나 일방적으로 인도하지도 무조건 강요하지도 않는다.
선택은 아들의 몫이란 걸 명확히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인생은 아름다워

그러나 위 아버지들 그 누구도 희생으로서 부성에는 이르지 못한다. 그
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아버지는 칸 심사위원 대상을 비롯해 숱한
상을 거머쥔 화제작 '인생은 아름다워'(97·로베르토 베니니)에
등장한다. 오로지 아들 조슈에(조르지오 칸타리니)를 살리기 위해 유태인
강제수용소에서 아들과 함께 한바탕 놀이를 펼치는 귀도(로베르토
베니니). 나치즘의 역사적 잔혹성을 무력화시키는 듯해 영화 자체는
못마땅하지만, 귀도의 부성에는 감동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거창하게 프로이드나 오이디푸스 신화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아버지는
증오와 저주의, 그래서 극복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그 점에서
5위작으로 뽑은 '셀레브레이션'(98·토마스 빈터베르크)을 따를 작품이
어디 있을까. 자신의 60번째 생일을 맞아 가족 및 친지들이 모인 축제의
장에서 아버지 헬게(헤닝 모리첸)는 아버지로서의 권위를 완전히
상실한다. 뿐만 아니라 집에서 내몰리기도 하고 심지어 자식에게
구타당하기까지 한다. 내 아버지, 우리 아버지들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나는, 우리는….

(전찬일·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