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겨울. 을지로 5가. 낡은 빌딩. 초라하지만 정열적인 영화인들….
영화에 대한 열정은 그 때 그 곳에서, 그들을 발견하며 시작됐다. 대학을
포기하고 영화를 선택한 후 똑같이 초라하고 정열적으로, 간신히
살아가던 1997년 겨울, 난 전화를 받았다. 처음 듣는 목소리. 그는
오기민이라는 프로듀서였다.
내 단편 '과대망상'을 본 그는 자신이 준비하고 있던 '여고괴담'의
연출을 의뢰했다. 장편영화감독 데뷔? 벌써? 난 약간 흥분해서 그가 건넨
시나리오를 읽었다. 그러나 흥미로운 소재였지만 선뜻 내키진 않았다.
일본 괴기영화에서 따온 듯한 아이디어와, 장르의 규칙을 뭉개 넣은
단순하고 어설픈 시나리오…. 아직 데뷔하기에는 어리다고 생각했고,
데뷔해야 한다는 강박도 없었다. 그래서 '거부당하면 그만이다'라는
생각으로 예를 갖춰 오기민 프로듀서에게 조건을 제시했다. 아이템의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점검을 위한 일본행과 기본적인 코드들(여고생,
학교, 귀신)만 지킨 새로운 시나리오….
그는 시나리오를 새로 쓰는 것에는 동의했지만, 일본에 가는 부분은
비용상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고민 끝에 갖고 있던 돈을 모두
털어 97년을 3일 남겨두고 일본으로 건너간 나는 호텔방에서 하루종일
일본 괴담영화를 비디오로 검토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여고괴담'은 그것들로부터 영향받았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난
그들이 그 소재를 다루는 일정한 패턴과 주제의식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어차피 우리의 현 교육제도가 일본에서 비롯된 이상,
소재의 유사성은 피할 수도 피할 필요도 없음을 깨달았다.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3주의 작업을 통해 새로운 시나리오를 써냈다. 오
프로듀서가 보여준 시나리오에서 몇몇 등장인물의 이름만 가져온 완전히
새로운 시나리오였다. 오기민 프로듀서는 당혹감을 감추며 원전을 조금
손본 시나리오를 다시 내게 제시했고, 팽팽한 대립 끝에 난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서로를 설득하는데 실패한 뒤 헤어지려던 순간, 그는 나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무심코 따라갔던 그의 집에서 난 우연처럼
놓여있는 식탁 위의 과도를 보았고, 이 사람이 혹시, 하는 짧은 공포를
느꼈다. 하지만, 그는 잠시 후 태연히 그 칼로 과일을 깎아주며 말했다.
"니 맘대로 해라…."
결국 난 내 시나리오를 갖고, 짧은 촬영기간과 부족한 후반작업시간을
악으로 깡으로 버티며 영화를 완성시켰다. 시나리오부터 개봉까지
5개월에 걸쳐 펼쳐졌던 숨가쁜 순간들. 그렇게 '여고괴담'은 나의 첫
영화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