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잔인하게 다가온다. 헬무트 콜(Kohl·72)처럼 한 시대를 풍미했던 보수 정치가에게 시간은 특히 잔인하다.
독일 총리 16년, 기민당 당수 25년, 하원의원 26년, 분단 독일을 통일시킨 지도자…. 콜은 12일 연방의회의 예산심의 본회의에 출석하는 것을 끝으로 파란의 의정생활을 마감했다. 그는 22일 실시되는 총선에 출마하지 않는다.
‘정치인’ 콜의 마지막 날은 의외로 “조용하고 고요했다”고 독일의 경제 일간지 한델스 블라트가 전했다. 그를 위한 특별행사도 없었고, 역사적 고비마다 명연설을 하곤 했던 그는 말 한마디 남기지 않았다.
남은 동지들의 ‘칭송’이 있긴 했다. 같은 당의 프리드리히 메츠(Metz) 원내총무는 연설 도중 “콜 재임 16년간의 한 해 한 해는 지난 4년간의 사민·녹색 연정 시절보다 나았다”고 말했다. 콜은 박수로 화답했을 뿐이다. 회의가 끝난 후 콜은 조용히 회의장을 나와 선거 운동을 돕기 위해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州)로 떠났다. 공영 1TV와 한델스 블라트 등 몇몇 언론매체만이 시간과 지면을 내 그의 ‘소리없는’ 작별을 기사화했다.
4년 전 총선에서 패배했을 때 사실 콜은 귀거래사를 읊어야 했다. 모두 콜이 정계를 은퇴할 줄 알았다. 하지만 콜은 자신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면서도 고집을 부렸다. 후계자 쇼이블레(Schauble)에게 당권을 넘겼지만 하원의원직은 놓지 않았다. 노욕(老慾)에 대한 응징이었을까. 그후 4년간은 콜에게 추락의 계절, 치욕의 세월이었다.
1999년 11월 콜은 총리 재직시 비자금을 조성했고, 프랑스 기업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스캔들에 휩싸였다. 언론은 부패 정치인으로 그를 묘사했다. 쇼이블레도 연루됐다는 사실이 언론을 타면서 쇼이블레는 총리직에 도전도 못 해보고 정계를 떠나야 했다. 콜은 비자금의 존재를 부정했고, “사민당의 정치공세”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과 의회의 조사가 시작되자 ‘비자금 200만 마르크 수령’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콜은 동독 지역의 지구당 관리에 이 돈을 썼다고 밝혔다. 그는 비자금 제공자의 신원을 밝히라는 빗발치는 요구에는 끝내 답하지 않았다. 작년 4월 검찰은 콜에게 벌금 30만 마르크를 부과하고 사건을 종결했다.
비자금 스캔들은 ‘통일의 영웅’에게 뼈아픈 상처를 남겼다. 위대한 업적을 상쇄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콜은 부담을 느끼는 듯했다. 그는 말이 거칠어졌고, 과거의 업적을 몰라주는 언론과 대중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때가 많았다. 그 와중에 햇볕 알레르기를 앓아 오던 부인 한네로레가 작년 7월 먼저 세상을 떴다. 최근엔 사민당 소속 하원의장인 볼프강 티어제(Thierse)를 나치와 비교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독일 언론은 콜의 퇴장은 한 시대의 마감을 의미한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위대한 정치가라는 찬사를 그에게 바치지는 않았다.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이 지난달 실시한 ‘역대 최고 총리’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콜은 아데나워, 브란트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