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하는 굴착기 소리를 배경으로 삽이 돌멩이에 부딪히는 소리가
불규칙하게 들렸다. 11일 오후 찾아간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 입구에는
끊어진 도로 대신 100m 정도 흙을 메워 만든 우회도로가 뚫려 있었다.
부근에서는 육군 50사단 장병 150여명이 포대에 흙을 담아 쌓아 유실된
제방과 농로를 복구했다. 군인들 옆으로 양 손에 생수·휴지 등 생필품을
든 할머니들이 먼지를 마시며 지나갔다. 트럭 짐칸에 타고 응급복구된
도로를 지나던 이용순(여·70·구성면 근평리)씨는 "집만 겨우 정리했지
떠내려간 농지는 손도 못 댔다"고 손사래를 쳤다.

태풍 '루사'가 지나간 지 12일째 접어든 김천시 수해지역은 전기가
공급되면서 주민들이 점차 안정을 되찾고 있었고, 군인·자원봉사자 등
2만여명이 도로·제방 응급 복구 작업에 한창이었다. 끊겼던 도로는
증산면 수도리 등 두 곳만 제외하고 대부분 소통됐고, 제방·농수로 응급
복구는 40% 가까이 진척됐다. 고립마을에도 발전기가 공수돼 전기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자원봉사의 손길도 이어졌다. 경북대 교직원·학생 등 400여명은 11일
김천 지례면 대율리 등에서 오물 수거 등 복구작업을 펼쳤고, 대구
계명대 교직원 35명도 조마면 신안리에서 도로 복구를 도왔다.

수재민들의 경제적 손실을 덜어주려는 자발적 움직임도 생겨났다. 육군
50사단과 김천과학대학은 11일부터 수해로 물에 젖은 양파를
정상가격으로 수매해 양파빵과 수프 등 가공식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김천과학대 관계자는 "이 빵을 복구작업을 하는 군인·자원봉사자들에게
공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수재민들의 고통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폭우로 보일러실과
곡식 창고·축사가 떠내려간 구성면 광명리 이순애(여·50)씨 집은 곡식
창고와 장독대가 있었다는 마당이 도랑으로 변해 있었다. 이씨는
"큰집이라 추석을 지내야 하는데 전화도 불통이고 수돗물도 나오지
않는다"며 "쓰러진 화장실을 오늘 겨우 일으켜 세웠고, 1㎞ 넘게
떠내려간 농기계들을 건져왔지만 고장나 양파 파종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마을 40여가구가 모두 침수됐던 구성면 상좌원리 주민 100여명은 가옥
파손이 심해 아직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마을회관 등을 전전하고 있다.
이상시(여·74)씨는 "복구할 엄두가 안 난다"며 "세제·라면 같은
구호품은 받았지만 구호비는 아직 한 푼도 못 받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