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가 된 지 1년쯤 됐을 때는 참 정신없이 바빴다. TV 뉴스와
라디오 뉴스, 새벽 일기예보, 주 3회 교양 프로그램과 야외 촬영이
있었다. 1년 가까이 단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
5분 간의 새벽 일기예보를 위해 새벽 3시에 일어나야 했다. 분장하고
자료 정리하고, 원고 작성하고…. 아무도 없는 회사 옥상 위에 올라가면,
원고가 비에 젖고 바람에 날리기도 하고, 너무 추워 입술이 떨어지지
않기도 했다. 주말도 없고 여가시간도 없었다.
그래도 일을 많이 한다는 느낌이 좋았다. 열심히 부지런히 살고 있다는
느낌.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정말 힘 빠지게 했다. "요즘 잘
안보이던데… 뭐해요?" 시청률 낮은 새벽과 심야에 방송을 하다보니
듣는 말이었다. 그야말로 품은 많이 들고 빛은 안 나는 일이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훨씬 편한 생활을 하고 있다. 방송 프로그램 수도,
출연횟수도 줄고, 1주에 하루는 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요즘 마주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많이 나오대… TV만 켜면 나오는 것 같아"
그때 '새벽 방송 백번보다 '한밤의 TV연예' 한번 하는 게 훨씬 효과
있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묵묵히 티내지 않고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새벽마다
아무도 없는 거리를 청소하는 환경미화원, 아침 일찍 사무실을 청소하는
아주머니, 남들 하기 싫어하는 궂은 일을 도맡아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수고에 감사한다. 내 직업은 일한 것보다 주목을 더 많이 받는 일이다.
빛이 나지 않는 곳에서 이 사회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혜승·SBS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