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 차례상엔 술대신 맑은 차(茶) 한잔 올려보세요.”
이연자씨(58·한배달 우리 차 문화원장)는 요즘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권한다. 자신이 100여 가지가 넘는 차 요리를 개발해낸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지난 4년간 전국 각지의 종갓집을 찾아다니면서
얻은 결론! 제사의 순서를 적어놓는 종가의 '홀기'엔 차를 올리는
순서가 반드시 있었다.
이것 말고도 이씨가 발견한 종가집 차례문화는 새삼스러운 게 많다. 추석
차례를 음력 9월9일에 지내는가 하면, 차례상이 지극히 검박하다는
사실이다.
"조선시대 예에 관한 대표적인 교과서였던 김장생의 가례집람에
'제사에는 차와 과일 한 접시, 그리고 후손들의 정성만 있으면 된다'고
나와 있습니다. 실제로 종가들 차례상은 허세니 낭비랑은 거리가 멀었죠.
화려한 유밀과며 기름 들어가는 전은 만들지 않고, 대추나 밤이 없으면
감자나 고구마로 대신하고요. 정성만은 대단해서 무슨 제사든 3일을
앞두고부터는 고기반찬은 물론 나쁜 말도 삼가고 떠들거나 웃지도
않았답니다. 음식 장만할 때는 침이 튈까봐 입에 창호지를 물고 만들
정도였지요."
이씨가 종가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물론 차 때문이다. '주자가례'에
보면 모든 제사에는 차가 올랐다는데 오늘날 우리 제삿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탓. 사대부 집안의 제례를 알아보면 궁금증이 풀릴 듯해
'종가여행'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방문한 곳이 40여 곳. 굳게 잠긴 종가의 빗장을 여는 데는
정성이 필요했다. 한 집에 두세 번 발길은 기본이고, 예를 다한 큰절로
종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들과 마주앉아 '천년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이씨의 관심은 차에서 종가의 생활풍습, 문화로 확산됐다.
"종가를 다니다보니, 우리 전통문화가 그렇게 고리타분하지도
화려하지도 않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남습니다. 직접 호미 들고 농사짓고
물 일 하는 종부도 있고, 종가도 시속 따라 변해가고 있지요. 4대조
제사를 같은 날 지내거나, 형제들이 각자 음식을 장만해오는 식으로요.
하지만 물질보다는 정신을 중히 여겨, 아무리 가난해도 덕을 쌓고 이웃에
베푸는 가풍을 그대로 이어가려는 고집은 여전했습니다."
그때문일까. 6남매 맏며느리인 이씨 또한 시어머니 돌아가신 뒤로는
차례상을 간소하게 마련한다. 보통 60만 원씩 들던 비용이 지금은 20여만
원이면 충분하다. 제사상에는 차 한잔에 다식과 송편, 과일을 올리는
정도. 기제사와 달리 차례에는 술을 한번만 올리므로 안주가 많지 않아도
된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종가에서 보고 듣고 배운 것을 두 권의 책으로 펴냈다. 이번에 펴낸
'명문종가를 찾아서'에서는 수연례와 관례, 혼례를 담았고 앞서 쓴
'천년의 삶을 이어온 종가 이야기'에서는 주로 제례를 다뤘다.
"뿌리를 알되 형식에 치우치진 말자는 게 공통점이더군요. 분수대로
예의를 지키는 가가례(家家禮)를 세워보세요. 젊은 주부들도 전통이라고
해서 무조건 귀찮아하거나 부담스러워만 말고, 그 본뜻을 이해해 명절을
즐겁고 행복한 분위기로 바꿔나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