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루사로 인한 피해가 전국 각지에서 속속 들어오고 있던 날 TV를
켰더니 강릉 지방에 살인적인 폭우가 내렸다는 것이다. 인접한 동해시에
부모님이 살고 계셨기에 난 갑자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전화와
휴대전화는 불통이었다. 뒤늦게 동해 시내에 살고 있는 막내 동생이
다급한 목소리로 소식을 전해왔다. 부모님이 뒷마을로 피신 중이라는
통화를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겼다고 했다.
TV에서 온통 피해상황 속보가 계속됐지만, 부모님 계신 지역 소식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다. 다행히 막내를 통해 하루 한 번 부모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어둠과 배고픔·불안·공포 속에서 지내실 부모님
생각을 하니 온몸이 떨렸다. 동해시로 들어가는 도로는 완전 두절되어
달려갈 수도 없었다. 재해대책본부에 고립사실을 알리고 식수
공급만이라도 해주길 눈물로 애원했다. 방송국·한전·전화국 등지에
고립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느라 목이 쉬어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마침 강릉쪽으로 길 일부가 뚫렸다는 소식을 듣고 이른 아침 동해로
향했다. 며칠이 걸려도 갈 수만 있으면 가겠다는 각오였다. 그러나 국도
진입로에서 차량 통제를 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물러설 수 없어 경찰의
통제도 무시하고 도망치듯 국도로 들어갔다.
강릉을 지나 남대천 쪽으로 걸려 있는 쓰레기와 자동차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때의 참상이 그려졌다. 공포에 떨었을 친지와 고향의
이웃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국도 변에는 흙더미에 묻힌 논과
밭, 부서지고 뒤엉킨 물건들, 내동댕이 쳐진 자동차들, 빨랫줄처럼
레일만 걸려있는 철길….
다행인 것은 어려움 속에서도 이웃들은 힘을 합쳐 서로를 돕고 있는
것이다. 그 난리통 속에서 피해를 적게 본 사람들은 다른 이웃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수해 초기 부모님의 안부가 궁금해 각 기관에
조치를 요청했을 때 신속히 대응하지 않는다고 원망했던 나의 이기심이
부끄러웠다. 더 많이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죄를 지은 생각이 든다.
아직도 고립되어 있을 산골 마을의 외로운 사람들을 찾아 관심을 기울여
주었으면 한다.
(李貞淑/주부·서울 강남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