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웨이
(거스 히딩크 지음/조선일보사/1만2000원)
"2001년 8월 14일. '진공청소기' 김남일을 만났다. 이제야 퍼즐 게임의
한 조각을 찾은 느낌이다.
2001년 9월16일. 이천수는 확실히 튀는 선수다. 큰 경기에 전혀 위축되지
않는 대담함이 있다.
2002년 5월16일. 안정환이 절묘한 테크닉과 결정력을 과시했다. 예전
일이 떠오른다. 바람에 날리는 긴 머리를 연신 만져대는 그에게 말했다.
그 체력과 정신력으로는 대표팀에 낄 수 없다. 일순 얼굴이 일그러졌다.
머리 스타일엔 간섭 않지만, 경기 중 눈을 가렸다. (지적했더니)
퍼머머리로 나타났다.
2002년 6월4일. 폴란드와의 결전에 앞서 김병지에 통보했다. 너를 선발
기용하지는 않지만 너를 존경한다. 내 진짜 감정이다. 김병지는 아무말도
않았다. 그저 사나이답게 받아들였다."
내 고향 동해가 큰 수해를 입어 다녀온 길이었다. 토사로 덮힌 마을들,
절망한 사람들로 우울한 나에게 반가운 얼굴이 웃음을 함빡 담고
나타났다. 단군 이래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외국인이라는 거스
히딩크 전 한국축구대표팀 감독.
그 양반이 애창곡으로 첫손 꼽는 노래 '마이 웨이'. 그 노래를 제목
삼은 자서전을 읽어내리며 나는 어느덧 가슴이 뜨거워져오는 것을
느꼈다. 지난 6월 월드컵의 열기와 자부심이 다시 살아왔다.
'마이웨이'는 지금까지 단편적으로만 알려졌던 히딩크의 어린 시절과
개인사, 그리고 지도자로서의 리더십을 한줄기로 꿰고 있다. 앞부분에는
출생부터 어린 시절, 축구 선수 생활을 마치고 축구 지도자로 새 인생을
시작해서 네덜란드 국가 대표 감독을 지낸 뒤 2000년 11월 한국 대표팀
감독직을 맡기로 한 시점까지가 담겨있다. 2000년 12월 17일, '우울한
회색 도시 서울'에 도착하던 날부터 2002년 7월 7일, 네덜란드로
돌아가기까지 뒷 부분은 히딩크가 직접 적은 일기다. 이는 고스란히
월드컵 4강 신화의 '비하인드 스토리'이기도 하다.
그는 "어려서부터 지고는 못살았다"고 자신을 말한다. 축구선수인
초등학교 교장 선생의 여섯 아들 중 세째로 태어난 그는 유달리 승부욕이
강했다. "축구에서 지면 엉엉 울었다. 우리 집에 그런 아이는 나
하나였다. 나는 이를 악물고 더 연습했다"고 회상하는 그에게서 지난
월드컵 경기 모습이 떠오른다. 그 격렬한 어퍼컷(!)과 심판에 대한
지능적인 항의, 그리고 골 세리머니를 마치고 달려온 박지성을 온 몸을
던져 끌어안던 열정!
월드컵 본선에 진출은 했지만 단 1승도 못 이룬 팀, 한국. 세계 무대의
'꼴찌'였던 한국팀을 4강에 올려놓은 히딩크는 담금질의 명수다. 그가
선수를 다루는 방식은 분석적이고 지혜로왔지만, 마음 깊이 사랑이
담겨있지 않았더라면 어려웠을 일이다. 73년부터 84년까지, 무려 11년
동안이나 특수학교 교사로 일했다는 것은 이번 책을 보고 처음 알았다.
"빨간 머리 학생이 칼을 들고 다가왔다. 내성적인 아이였다. 사고를 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지만,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중략) 그는 칼을 내려놓고 눈물을 펑펑 흘리며 미안하다고
했다. 난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는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아이들이 살아남으려고 노력하는 것을 목격했고, 이들로부터 많은 걸
배웠다"고 말한다.
좌절한 선수들을 격려하고, 안이하고 오만한 선수는 약을 올려서
다그치는 히딩크식 심리전. 호마리우를 약올렸던 그대로 안정환을
자극해서 결국 '골든 골'의 사나이로 만들어낸 그는 자신도 좌절을
경험해 본 사람이다. 무엇보다, 선수 생활을 그만두어야 했을 때의
좌절을 지금도 절절하게 가슴에 새기고 있다. "80년, '나이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다음 시즌 계약을 거절 당했을 때 나는 너무 화가 났다.
나의 일부분이 죽는 것 같았다."그러나 그같은 좌절의 경험이 얼마나
든든한 자산이 되었는지!
나는 남의 일기를 훔쳐보면서 월드컵의 흥분을 다시 한번 만끽한다.
"나중에 이탈리아 선수들이 라커룸과 숙소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갔다는 말을 듣고는 한심한 패배자들이라고 생각했다."(6월 18일)
"우리 수비는 그때 딴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집중력이 왜 떨어졌는지
모르겠다. 터키 공격수의 스피드를 과소평가한 탓이다."(6월 29일) "단
1분도 뛰지 못한 선수들에게도 감사했다. 그 선수들은 대단히
실망했겠지만, 그게 스포츠 세계다."(6월 29일)
수해 복구 현장을 보여주던 텔레비전 뉴스는 이어 히딩크 감독의 서울
방문을 전한다. 그는 "수해로 큰 피해를 입은 분들에게 도움이 될
방법을 찾겠다"고 인사했다. 그 양반, 참, 머리는 빠르네, 하면서도 그
진심이 반갑다. 그 양반, 우리 나라서 돈도 엄청 벌어가지만, 덕분에
우리 선수들도 수출하는 것 아닌가. 결국 우리는 히딩크 감독을 통해
남는 장사했다.
( 심상대·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