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총기를 휴대하고 다니는 잘랄라바드의 주민들.이들은 언제 어디서 군벌이나 탈레반 병사들이 출몰할지 모르는 불안한 나날을 살고 있다.

카불의 주요 도로, 정부 기구 건물, 번화가 등에는 미군 특수부대원들이
상주해 있다. 가끔 남루한 행색의 아프가니스탄 어린이들이 서툰 영어를
외치며 껌이라도 얻어 먹으려 몰려오지만 자동소총에 장검(長劒)까지
장착한 그들의 눈은 행인들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는다.

카불 외곽의 곳곳에서도 전차와 기관포로 구성된 미·북부동맹군의
진지가 설치돼 오가는 차량을 검색한다. 지난 3월, 전쟁이 끝난 것처럼
알려졌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난 5일에도 시내 한복판에서 자동차
폭탄 테러가 발생, 26명이 사망하고 150명이 부상했다.

정치적 동기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같은 테러 못지않게 무서운 것이
밤이면 떼강도로 돌변하는 무장(武裝) 주민들이다. 아프간 전역은 저녁
7시쯤 해가 지면 주요 도로에서 인적과 차량이 끊긴다. 언제 어느 때
돈은 물론이고 목숨까지 빼앗길지 모르는 무정부 상황이 실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불시 주택가 도로변에 탈레반군의 탱크가 파괴된 채 놓여 있는 거리를 주민들이 무심한듯 지나고 있다.

9·11사태 1년이 다가오면서 아프간 국민들 사이에서는 미국과
북부동맹군이 탈레반 정권을 축출한 전쟁을 두고 엇갈린 견해들이
나온다. 아지라(카불대 수학과 1)는 '해방전쟁이었다'고 말했다. 시장
상인 압둘라(42)는 "탈레반도 잘못했지만 미국도 잘한 것은 없다"는
견해다. 탈레반 시대를 그리워하는 빈민층도 있다고 한다. 이래저래 살기
힘드니 총으로 한풀이하는 게 낫다는 식이다.

아프간 사람들 가운데에는 미국이 9·11테러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테러조직 알 카에다의 오사마 빈 라덴과 탈레반의 지도자 모하마드
오마르의 생존 사실은 물론, 그들이 은신하고 있는 위치도 알고 있으면서
잡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 미국이 아프간에 계속 머물기
위해 이 둘을 살려두고 있다는 이야기다. 파키스탄의 한 신문보도가
출처인 이 같은 내용이 아프간 사람들 사이에 그럴싸하게 유포되는
이유는 아프간 사람들이 미군의 장기 주둔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전쟁 중에 폭파당한 왕 묘소와 황폐화된 주변 모습.이 왕 묘소 주위에도 지뢰 등이 널려있다.

게다가 9·11사태 1주년 날, 현지 미군 사령관이 뉴욕 무역센터
테러현장에서 발견된 찢어진 성조기(星條旗)를 카불에 게양하는 기념식을
할 것이라는 헛소문까지 퍼지면서 카불의 긴장감은 고조되고 있다.

탈레반과 알 카에다 잔당 못지않은 불씨는 막강한 무장력을 갖춘 지방
군벌(軍閥)이다. 파키스탄 인권사무국의 아만 칸은 현재 아프간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현 카르자이 수반 정부가 민주적으로 선출되지
않았고 군벌들을 누르고 전 지역에 법과 질서를 유지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프간인들이 처음에는 미군을 해방군으로
여겼지만 갈수록 반미감정이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군,
반정부군, 군벌이 이 나라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각축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카불 시내의 중심가에 위치한 시장에서 주민들이 활기찬 모습으로 왕래하고 있다.탈레반이 붕괴된 이후 주민들은 자유롭게 나다니며 물건들을 사고 판다.

이들 못지않게 아프간 국민들도 생존을 위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주민들에게 가장 심각한 위협은 도로에 매설된 지뢰(地雷)다. 유엔에
따르면 9·11 직전까지 아프간 전역에 매설된 지뢰는 1000만개가 넘는다.
지뢰는 특히 많은 어린이들을 장애인으로 만들었다. 모두 700㎢의 땅이
지뢰로 인해 불모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탈레반이 주 수입원으로
삼았던 아편 재배(1995년 생산량 2000t 현재 4600t추정)도 국민들을
좀먹고 있다.

이런 문제들이 산적하다 보니 넉 달째 계속돼 온 산하를 허옇게 태워버린
가뭄이나 삼림 난벌(亂伐)로 인한 환경 파괴, 저질 석유로 인해 자동차
배기통을 타고 뿜어져나와 도시를 시커멓게 뒤덮은 가스는 관심권 밖일
수밖에 없다.

아프간에서 미군과 이슬람세력 간의 전쟁은 일단 끝났지만 아프간
주민들의 생존을 위한 전쟁이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