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남북 통일축구가 열리는 한국 땅을 밟는다. 네덜란드로 올 땐 추억을
담아 왔지만, 이번엔 내가 걸어온 축구 인생을 책으로 엮어 팬들에게
들고 간다.
월드컵이 끝나고 네덜란드로 돌아간 뒤에도 나는 계속 한국 꿈을 꾸었다.
영양 주사를 맞아가면서도 그라운드에서 마지막 남은 한 방울 땀까지
쏟아냈던 선수들, 경기장과 길거리를 가득 메운 채 '대~한민국'을
외쳐대던 한국 축구팬들….
'한국 축구의 월드컵 4강'은 잊지 못할 추억이었고, 황홀한 꿈이었다.
23명의 선수들과 한국 국민들이 정성과 열정으로 만들어 낸 기적이었다.
그들이야말로 주인공이었고, 나는 조연자였다.
네덜란드에서도 나는 한국과 함께 했다. 많은 친구들의 감사 전화와
편지가 이어졌다. 고향 바르세펠트로도 주소 없이 'To Mr.
Hiddink'라고만 적힌 편지와 선물이 끊임 없이 날아들었다.
나는 자서전을 쓰면서 내가 살아온 인생과 한국대표팀 감독으로 지낸
500일을 되새겨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때론 힘도 들었지만,
정말 행복했던 순간들이었다.
월드컵이 끝난 뒤 한국에 축구 열풍이 불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작은
힘이나마 내가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니 가슴 뿌듯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걱정이 앞섰다. 한국이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새로운 선수들을 투입해
시험하다 보면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얻을 수도 있다. 나는 한국의
축구 팬들에게 당장의 결과에 흥분하기 보다는 먼 미래에 대한 안목으로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주기를 당부하고 싶다. 한국 축구는 지금이
전환기이기 때문이다.
월드컵을 통해 축구의 참 매력을 알게 된 많은 한국 청소년들이 축구에
인생을 걸고, 또 주위 어른들이 그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게 된다면 한국
축구의 힘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그 동안 나는 한국 대표팀을 맡으면서 팬들에게 내 생각이나 계획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했다. 그 때는 월드컵에서 최고의 전력을 만들어 내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지상 과제였다. 항상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그
동안 못다했던 이야기, 축구에 모든 것을 걸고 살아온 못난 축구인의
생각을 이제야 책으로 정리했다. 내가 살아온 길이 모범적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좌절한 사람들, 실의에 빠져 미래를 포기한 사람들
가운데 단 한 사람이라도 내 자서전을 읽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면 좋겠다.
이제 한국은 축구 강국이다. 스코틀랜드 등 유럽 축구 강국들이 내게
한국 국가대표팀과의 친선 경기가 성사되도록 도와달라고 부탁을 해 오고
있다.
이번에 열리는 남북 통일축구경기는 아시아에서 처음 열린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른 한국이 또 한번 만들어낸 놀라운 업적(Tremendous
Achievement)이다. 축구는 단순한 게임(Simple Game)이다. 하지만
복잡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힘이 있다.
하나의 공을 향해 서로 달리고 부대끼다 보면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다.
서로의 이념과 색깔을 버리고 그라운드에서 어우러진다면 축구를 통해
서로가 하나 되는 환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이미 1966년에
'월드컵 8강'에 들었고, 이번 2002월드컵의 한국 경기는 북한 TV에도
소개가 됐다고 한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축구가 남북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 매개체가 되었으면 좋겠다.
한국은 내게 '축구 감독을 맡았던 나라' 그 이상의 의미다. 나는
명예국민증까지 받았다. 나는 한국이 자랑스럽다. 이 소중한 인연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 한국 축구가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할 생각이다. 이번 남북 통일축구경기 관전도
이미 아인트호벤 구단 감독 자리를 놓고 협상을 할 때 조건으로 내걸었던
사항이다. 꼭 보고 싶은 경기였기 때문이다. 오는 7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남북 통일축구경기에서 나는 '제2의 조국'
한국의 통일을 꿈꾸며 한국인들과 함께 "대~한민국"을 소리 높여 외칠
것이다.
(거스 히딩크/전 월드컵 국가대표팀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