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성(李仁星·49)은 여러 겹의 얼굴을 가진 텍스트다. '한 없이 낮은
숨결'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 등 기존 소설문법을 교란한
작품을 통해 그는 마치 비교( 敎)에 몸담고 있는 신도처럼 열광하는
문청(文靑)들의 숭배를 받았다. 그 속에 있는 또 하나의 얼굴을
길어올리면 편집자의 모습이 드러난다. 문학평론가들이 문예지의
편집방향을 좌지우지하는 한국의 문단 현실에서, 그는 거의 유일무이하게
소설가로서 문예지 편집인의 책임을 맡고 있다.
본인은 드러내지 않지만, 한 번 더 그 꺼풀을 들어올리면 근대 이후
새로 형성된 신흥 명가(名家)의 책임감과 자긍심을 발견한다. 그의
아버지는 역사학자 이기백(李基白·78·이화여대 석좌교수), 삼촌은
국어학자 이기문(李基文·72·서울대 명예교수)이고, 자신도 서울대
불문과 교수로 강의를 시작한지 근 20년째다.
문예계간지 '문학·판'의 편집인을 맡은 지 1년째, 그리고 만 3년
만에 중편 소설 '분명히 나쁜 꿈'을 계간지 '문학과사회' 가을호에
기고한 이 '중층적 텍스트'를 서울 동소문동 한신아파트 자택에서
만났다.
―'문학·판'의 편집인을 맡은 지 만 1년이 됐다. 그간 문예지를
만드는 일은 보통 평론가들의 몫으로 남겨졌었는데.
"창작의 입장에 서면 비평과는 다른 시각에서 작품을 발굴할 수 있다.
시인 함성호, 성기완이 우리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강력하고 독특한 이미지를
구사하는 시인·작가들을 찾아내는 데 관심을 둬 왔다."
※1980년 '문학과 지성' 봄호에 중편 '낯선 시간 속으로'를 발표하며
등단한 뒤 그의 이면(裏面)에는 끊임없이 편집자로서의 욕망이 함께
존재했던 것 같다. 80년대 '문지' 폐간 이후에는 이성복, 정과리 등과
무크지 '우리 세대의 문학'을 창간해 활동했고, '문지' 복간
이후에도 '비공식 동인'으로 매주 금요일의 편집회의에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다.
―99년 소설집 '강 어귀에 섬 하나' 이후 처음으로 중편 소설 '분명히
나쁜 꿈'을 발표했다. 그동안 생산해 내지 않은, 또는 못한 이유라도
있는지.
"원래 책 한 권 내면 1,2년은 작품 발표가 잘 안됐다. 메모도 계속하고,
자료도 모으고, 머리 속에는 3~4편 정도를 동시에 구상하는데 말이다.
원래 좀 늦다.(웃음) 어느 날인가, A4용지 반 장 정도 써 놓고는 오늘 할
일 다한 듯 너무 뿌듯해서 술 먹고 쉰 적도 있다."
※드러내기를 꺼려하지만 그의 과작(寡作)은 문단에서 이름났다. 그가
발표한 한 편의 작품 뒤에는, 다 쓰고 나서 마음에 들지 않아
폐기처분하고 심지어 태워버리기까지 한 세 배 이상 분량이 숨어 있다.
이번에 발표한 소설이 원고지 200장인데, 휴지통으로 들어간 분량은
600여장이란다. 그는 80년대에 발표한 에세이에서 "최초의 의도대로
쓰여지는 글은 글이 아니라 제품이다"라고 쓴 적이 있다.
―'소수문학의 챔피언'으로 당신을 규정한 글을 본 적이 있다. 문장
하나하나는 너무나 명료한데, 그걸 엮으면 난해해진다. 문체나
수사학보다는 사유방식의 난해함때문인 것으로 보이는데.
"그게 바로 삶이 아니냐. 지금 내가 커피를 마시는데 맛이 있다, 없다,
색깔이 어떻다,라는 반응은 즉자적으로 나올 수 있다. 삶의 순간,순간은
너무나 명료하다. 하지만 이인성이 어떤 인간이냐, 라고 물으면
복잡해진다. 삶은 난해한 건데, 그걸 어떻게 명료하게 표현하나. 그것은
거짓이나 환상 아닌가. 내 문학은 그 총체적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는 완벽한 기승전결이 갖춰진 전통적 소설은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보여주려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삶의 제대로 된 총체적
풍경이 아니라, 하나의 이데올로기일 뿐인.
― 아버지, 삼촌이 저명한 국학자이시고, 오산학교를 세운 이승훈 선생이
선조되신다고 들었다.
"정확하게는 할아버지의 작은 할아버지였다고 한다. 명가(名家)라고
하기는 그렇고, 그 때만 해도 평범한 중인 계급이었다. 식민지 시대였을
때 할아버지가 '국학'과 '과학'에 관심을 쏟아야한다고 믿으셨단다.
이북에서 돌아가신 둘째 작은 아버지는 '화학'을 전공했고, 넷째 작은
아버지는 '공학'을 하셨다."
※그런 집안이었기에 대중과 상관없는 문학, 소위 '엘리트 문학'을 할
수 있었던 게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남들도 할 수 있는 문학에 하나
더 덧붙이는 정도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냐"면서 "나만 할 수 있는
것이어야만 문학이고 예술"이라고 했다. "그것을 엘리티즘이라고
비판한다면 기꺼이 감수하겠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