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전 헬기에서 내려다본 강원도 동해시 인근의 망운산 일대. 지난 2000년 산불로 인해 지반이 약해진 산자락에 제 15호 태풍 ‘루사’의 피해가 겹치면서 곳곳에 손톱으로 할퀸 것 같은 산사태의 흔적이 남아 있다. /東海=<a href=mailto:krchung@chosun.com>정경렬기자 <

3일 낮 30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 동해시 삼화동으로 향하는 철로 위로 라면 박스와 물통을 짊어진 ‘피난민’ 행렬이 이어졌다. 태풍 ‘루사’가 불어닥친 지난달 31일 전체 주택의 95%가 수해를 입은 삼화동의 이재민들이었다.

이들은 시내로 나가는 유일한 진입로마저 유실되면서 구호물자 공급이 안되자 왕복 3~4시간씩 식량을 구하러 시내까지 걸어다니고 있었다. 길에서 만난 은월주(殷月珠·68) 할머니는 “물도 양식도 없어 사흘 동안 매일 라면 1개씩밖에 못먹고 걸어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은 할머니는 부르튼 발을 보여주다 말고 털썩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이번 수해로 동해시 전체 인구 10만3000명의 10%가 넘는 3800가구 1만1500명의 이재민이 나왔지만, 이 도시는 4일째 외부와 완벽하게 고립돼 있었다. 속초로 가는 동해고속도로와 정선으로 이어지는 42번 국도, 태백행 38번 국도 등이 모두 산사태·교량 붕괴 등으로 차단됐다. 강릉으로 연결되는 7번 국도가 유일한 통로지만 그나마 산사태 등으로 1차선으로만 양방향 통행이 이뤄지고 있었다.

특히 동해 시내 삼화동은 전체 1700가구 5200명 중 1500가구 4200명의 이재민이 나올 만큼 피해가 컸다. 뒤로는 해발 1340m의 백봉령, 좌우로는 이번에 범람한 무릉·신흥천에 갇히고 외부로 통하는 유일한 도로는 유실돼 ‘섬 아닌 섬’이 돼있었다.

삼화동 동네 어귀로 들어서자 인근 공장에서 흘러나온 기름과 오물의 악취가 코를 찔렀다. 가뜩이나 좁은 도로는 진흙탕에 뒹군 TV·세탁기·이불 등이 널려 있어 걷기조차 힘들었다. 주민들은 며칠째 갈아입지 못한 누더기 옷을 걸친 채 말없이 집안의 진흙을 쓸어 담고 있었다.

전기·통신·상수도마저 끊긴 상태에서 주민 5200여명에겐 복구는 커녕 생존 자체가 문제였다. 이날 헬기를 이용한 생필품 공급이 일부 시작됐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시내까지 걸어서 조달하는 라면과 물로 버티고 있다.

정해령(丁海令·20·강릉대 재학)씨는 “1주일간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 하루 두번씩 시내에 왔다갔다하며 생필품을 나르고 있다”고 말했다.

범람했던 신흥천에는 오물과 기름 섞인 흙탕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주민 100여명은 이곳에서 빨래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인근 삼화초등학교의 마룻바닥에 종이박스를 덮고 새우잠을 자는 밤도 고통스럽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