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를 보러 개봉관을 찾는다는 것은 더 이상 어색한 일이 아니다.
최근 몇 년간 우리 영화의 약진은 눈부실 지경이다. 영화를 촬영했던
곳들이 하루아침에 명소(名所)가 되는 일도 흔하다. 경기도에서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체취가 남아 있는 곳은 어디일까? 가을 문턱, 은막(銀幕)
속 주인공이 된 기분으로 채 못다한 추억과 여운을 찾아 떠나볼 만한
곳들을 찾아본다.
◆'겨울 나그네'의 남이섬='저녁 노을 속으로 사라지는 굴뚝 위의
흰 연기처럼 지나가버린 젊은 날….' 최인호 원작, 곽지균 감독의
'겨울 나그네(1986)'는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름다웠던 옛
추억들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 대한 영원한 찬사와도 같다. 대학생
민우(강석우)가 다혜(이미숙)와 눈 내리는 밤을 함께 지낸 뒤 형사들에게
연행되던 강변의 별장은 남이섬에서 촬영됐다. 북한강에 반달 모양으로
떠 있는 남이섬은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가슴이 탁
트일 만한 8만여평의 잔디밭과 하늘로 끝없이 뻗은 포플러 산책길이 잊기
힘든 추억을 선사한다. 가평군 가평읍 근처 남이섬 선착장에 차를
세워두고 배를 타고 건너간다. ☎(031)582-8687
◆'편지'의 아침고요수목원=이정국 감독의 '편지(1997)'는 전국
200만명 관객들의 손수건을 적셨던 '신세대 멜로'영화였다. 영화
속에서 환유(박신양)와 정인(최진실) 부부가 결혼식을 올리던 야외
잔디광장은 가평군 상면 행현리 아침고요수목원에 있다. 삼육대 한상경
교수가 축령산 기슭에 조성한 10만평 규모의 수목원으로 온갖 꽃과
분재를 심어놓은 테마정원들과 산책로들이 동화 속 세계와도 같은
별천지를 이뤄 놨다. ☎(031)584-6702~3
남녀 주인공이 자전거를 타는 장면은 포천군 소흘읍 광릉 국립수목원에서
촬영됐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서울종합촬영소="이보라우, 그림자
넘어왔어." 남한 병사(이병헌)와 북한 병사(송강호)가 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굳은 표정으로 대치하던 곳.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2000)'에 등장하는 판문점 세트는 서울종합촬영소 안에 있다. 보통
'양수리 촬영소'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남양주시 조안면 삼봉리 소재.
영화 '신장개업'을 찍은 80년대 지방 도시 세트, 전통한옥 세트
'운당', 법정 세트, 영상체험관, 의상·소품실들을 구경하다 보면
영화의 한 장면 속에 들어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45번 국도 춘천
방향으로 가다 양수리 검문소 지나면 이정표가 보인다. ☎(031)579-060
◆'섬'의 고삼저수지='우리가 늘 찾아가고 싶어 동경하는 곳이지만
막상 가면 도망가고 싶은 곳.' 작품마다 독특하고 감각적인 영상미를
보여주는 김기덕 감독의 '섬(2000)'은 안성시 고삼면 고삼저수지에서
촬영됐다. 낚시터의 젊은 여인 희진(서정)을 둘러싼 살인과 사체유기
등의 엽기적 사건들이 모두 이 고립된 공간에서 펼쳐진다. 영화의
분위기처럼 자욱하고 신비로운 안개가 몽환적 분위기를 풍기는 84만평의
고삼저수지는 낚시터 주변에서 나룻배를 타고 호도(湖島)로 건너가거나
산책을 즐기기에 좋은 장소다. ☎(031)673-6433
◆그밖에…=이영재 감독의 '내 마음의 풍금(1999)'에서 열 일곱살
초등학생(전도연)이 강물에 빠지는 장면은 가평군 북면 명지계곡에서
촬영했다. 이정향 감독의 '미술관 옆 동물원(1998)'을 찍은 곳은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대공원. 김상진 감독의 '주유소
습격사건(1999)'에 나오는 주유소는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오일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