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일본을 10년에 걸친 장기불황의 늪에 밀어넣은 요인은 자산가격 버블(거품)이며, 그 중에서도 부동산 버블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몇해 전 미국 학계에서, 버블이 심화되던 1988년을 전후해 일본이 이자율을 두 배로 올렸더라면 ‘잃어버린 10년’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연구보고가 나와 눈길을 끌었다. 거시(巨視) 금융의 대가인 버난크와 거틀러 교수는 통계적 시뮬레이션을 통해 그 가능성을 입증했다. 이는 부동산 버블을 일으킨 근본 요인이 ‘저(低)금리’였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최근 세계적인 동조(同調) 현상을 보이는 부동산 가격 오름세도 결국 저금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난 10여년간 세계 각국이 이른바 ‘인플레이션 타게팅(직접적인 물가관리)’ 정책을 펴 저(低)물가·저금리가 확산됐고 그 결과 돈이 부동산으로 몰리면서 집값 상승을 부추긴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더욱이 버블 초기 일본과 요즘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너무나 ‘닮은 꼴’이다. 우선 저금리로 인해 시중에 돈이 과도하게 풀려나간 점이 그렇다. 버블이 한창이던 1980년대 후반 일본의 통화증가율은 10%를 넘어섰다. 우리나라도 증시에 해외자금이 유입되면서 작년 말 통화증가율이 이미 10%대로 올라섰다.

전체 주택은 남아도는데도 특정 지역이 집값 급등을 주도하고 있는 것도 공통점이다. 일본의 경우 주택보급률은 1960년대 말 이미 100%를 넘어 88년 111%에 달했다. 우리나라도 집계방식에 다소 이견은 있지만, 주택보급률이 100%에 근접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집값 상승을 주도한 것은 일본의 경우 도쿄 등 6대 도시였고, 한국은 서울 강남 지역이었다.

또 수출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내수(內需)가 경기를 떠받치고 있는 점도 비슷하다. 80년대 말 일본은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선 가운데 내수 중심의 경기 활황이 이어졌다. 한국도 기업투자는 여전히 저조한데 소비가 경기회복을 이끌고 있는 양상이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볼 때 좀 성급한 결론일지 모르지만, 우리나라도 ‘일본형 부동산 버블’로 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부동산 버블은 경제에 치명적인 독약(毒藥)이다. 근로의욕과 기업가 정신을 감퇴시키고 소득분배를 왜곡시킴으로써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여기에 물가와 임금이 상호 상승 효과를 일으키고 대통령 선거까지 겹칠 경우…. 그 다음 우리 경제가 밟을 수순은 상상조차하기 싫다.

그렇다면 대책은 무엇일까. 일본이나, 80년대 중반 부동산 버블을 경험한 영국을 봐도 ‘뾰족한 해법’은 있을 리 없다. 저금리가 부동산 버블의 원인이라 해서 현실적으로 금리를 두 배로 올릴 수는 없다. 금리 인상이 당장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부동산뿐 아니라 금융·실물경제 전반을 얼어붙게 하는 부작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시장원리’로 풀 수밖에 없다. 강남에 집을 더 짓거나, 비(非)강남권에 대체 주거지를 조성해 공급을 늘려야 한다. 또 강남에 밀집한 학원을 분산시키고 투기세력에 대해 과세를 강화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주택수요의 변화를 정확히 파악해 이를 충족시키는’ 수요자 중심의 정책을 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올 들어 4차례에 걸쳐 내놓은 부동산 안정 대책은 ‘핵심’을 비껴간 것이다. 무주택 서민용 임대주택과 공공주택단지를 지금보다 2~3배 늘린다고 강남 집값이 떨어질 리 없기 때문이다. 한 건설회사 CEO는 “최근 몇년간 국민의 주택수요가 빠른 속도로 고급화·선진화한 데 비해, 정책을 입안하는 공무원들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 우리나라도 부동산 정책의 패러다임이 ‘양(量)보다 질(質)’을 중시해야 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걸 무시하고 공정위가 아파트 부녀회를 ‘투기꾼’ 취급해 담합 혐의로 조사하겠다고 나선 것은 본말이 뒤바뀐 ‘코미디’일 뿐이다.

( 李 濬/ 산업부장 junlee@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