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연재소설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진행돼도 좋은가, 하는 느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느슨한 문장의 예전 신문소설에 실망한 독자라면,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영원한 제국' 의 작가 이인화(36·이화여대 국문과 교수)씨가 9월
2일부터 조선일보에 판타지 소설 '서유기'를 연재한다. "현대 사회는
멀티미디어 시대이기 때문에 소설은 영화·게임 등 다른 모든
엔터테인먼트 상품과 경쟁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이씨는
"재미와 속도를 소설 연재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이인화의 서유기'는 1300년 전 오승은(吳承恩) 원작 서유기를 2002년
한국의 눈으로 재구성한 '판타지'라는 점에서 우선 파격이다. '해리
포터' '반지의 제왕' '스타 워즈' '공각 기동대' 등의 소설,
영화, 애니메이션처럼 '서유기'를 쓰겠다는 것이다. 이씨는 "정보화
시대가 생산성은 향상시켰지만 일거리는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폭주하고
있고, 책임은 과중하게 만들었다"면서 "판타지는 이 같은 '카오스
시대'를 대변하는 서사양식"이라고 했다.
‘이인화의 서유기’는 2002년 서울에서 출발하는 ‘은하 서유기’다.
"소설은 과천 서울대공원 원숭이 우리에서 500일을 갇혀 있던 손오공이
마취상태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현세의 삼장법사는 뉴욕의
젠(ZEN)센터에서 한국 선불교를 수련한 미국인 여의사로 설정됐구요.
손오공은 홍콩의 펀드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저팔계, 인도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는 사오정과 재회하고, 파멸의 위기에 처한
우주를 구하기 위해 10만 8000광년 서쪽에 있는 타트하가타 별로
떠납니다."
손오공과 삼장법사 등은 이제 '생명체들의 패턴'이라는 컴퓨터
프로그램화된 에네르기를 구하기 위해서 험난한 여정을 펼쳐나간다.
이씨는 "한국에서는 그동안 판타지 소설을 대학생들이 통신공간과
인터넷에 올리는 하위 장르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았다"면서 "재미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고전의 품격을 부여할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이씨가 이번 연재소설을 통해 꿈꾸는 또 하나의 욕망이 있다. 이
판타지를 통해서 "자칫 '세대 갈등'내지, '세대간 전쟁'으로 불거질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욕망을 통찰하고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져보자"는
것이다.
"지금의 젊은 층은 원전 '서유기'보다는 '드래곤볼', '날아라
슈퍼보드' 등의 만화로 '서유기의 세례'를 받은 세대 아닙니까.
무조건 딱딱한 원전을 읽혀야 한다는 주장에는 무리가 있겠죠." 그는
"판타지 소설의 황당한 이야기는 이성에 억압되어 있던 인간의 욕망과
감성을 해방시켜 부조리하고 복잡한 현실을 더욱 생동감있게
표현한다"면서 "이번 '서유기'는 젊은 세대가 가진 변화의
에네르기를 합리적인 미래로 견인하고자 하는 지금 시점에서 선양될
필요가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그 동안의 내 소설들이 멜랑콜리에 젖어 있었고, 그게 내
작품의 매너리즘이 되었었는데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는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독자들에게도 "분명히 확인하지만,
독자가 읽으면서 즐거울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심지어
"내 욕심은 미국 워너브라더스가 이 소설의 영화판권을 사게 만드는
것"이라고까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이인화씨는…
1966년 대구생. 서울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1988년에
문학평론으로 등단, 1992년부터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작가세계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중한청년학술상, 추리소설
독자상, 이상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주요작품으로는 장편 '내가 누구인지 말 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영원한 제국' '하늘꽃' 등이 있으며 뮤지컬, 오페라,
설치미술, 창작발레 등의 시나리오를 써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