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비어천가(新龍飛御天歌)의 유탄이 엉뚱한 방향으로 질주한다는
느낌이 든다.
김성동 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임기 1년4개월을 남겨둔 시점에서,
무엇보다 올 대입수능을 2개월여 앞두고 지난 26일 전격 사퇴했다. 이미
알려진 대로 김 전 위원장은 고교 근현대사교과서의 전·현 정부 치적에
대한 편향기술문제와 관련해 교육인적자원부의 언론대책문건을
한나라당에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이 편향기술의 책임문제에 관련해서도
교육부가 주도했다는 자필메모를 덧붙였다. 이것이 교육인적자원부와
청와대의 심기를 건드려 사퇴압력의 발단으로 번진 게 아닌가 짐작이
간다.
하지만 임기제 공무원을 정치적인 압력으로써 축출하는 것은 쉬운 일도
바람직한 일도 아니다. 그래서 청와대는 김 전 원장에 대한 그 공무상
비밀누설 외에 비리첩보까지 수집하여 청와대 하명사건을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넘겨주었다. 이에 경찰청이 집중수사에 나섰고 교육부도
그를 해임시키기 위해 평가원이사회를 소집하기까지에 이르렀다.
고립무원의 상태에 처한 김 전 원장은 사표를 제출하였고, 사퇴압력은 그
결말을 본 셈이다.
정권 말기마다 국가기밀이나 공무상 비밀이 유출되어 정쟁의 불씨가 되는
경우가 흔하다. 공직기강 해이의 한 단면일 수 있다. 이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면 권력의 도덕성과 공직윤리를 강화하여야 하고 인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높여야 한다. 정부로서는 대선을 앞둔 정권말기에
공직자들의 기강 해이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이 사건을 계기로 본때를
보이고자 했을 법하다.
그렇다면 문제는 김 전 원장이 한나라당에 제공한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의
편향기술 논란문건이 공무상 보호해야 할 가치 있는 비밀에
해당하는가라는 점이다.
정권적 차원에서 공직기강을 유지하기 위해 비밀의 폭을 확대하여 국민이
알아야 할 진실이나 더 중요한 정당한 이익 옹호를 차단하는 수사권
발동이라면 수사의 논리나 윤리에 적합할 수 없다. 더구나 개인비리
차원으로 확대하여 주머니 먼지까지 털어보고자 하는 시도를 보인 것은
수사권의 과도한 행사로서 표적수사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문제의 핵심은 매년 일본의 편향된 역사 인식과 역사교과서 기술의
국민적 공분이 일어나는 시점에 우리 스스로 역사기술에서 편향성을
드러냈다는 점과 그 점에 대한 정치적·윤리적인 책임의 소재를 밝혀야
한다는 점이다.
김 전 원장은 평가원은 교육부로부터 검정교과서 위탁을 받았지만,
검정위원 선정 등 대부분을 교육부가 주도했다는 진술을 통해 책임소재가
어디에 있는지를 일관되게 암시했다. 그 책임소재는 치졸한
신용비어천가파동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밝혀져야 할 중요한
사안이다.
책임의 소재를 밝히고 재발방지에 주력해야 할 정부가 엉뚱한 사람을
속죄양으로 만들고자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면 과거 권위주의정권의
행태와 다를 바 없다. 그런 정권은 국민을 안심시키는 것이 아니라
불안하게 만든다. 결국 민심은 등을 돌리고 점점 멀어져간다.
권력은 법적 평화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최선의 임무를 다해야 하지만
한 개인을 표적삼아 집중적으로 괴롭히고 못살게 굴어서는 안 된다.
불법과 비리에 대한 수사와 통제가 필요하지만 형평성과 예측가능성의
범주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공동체의 평화와 정의를 확립한답시고 한
개인에게 과도한 희생을 부담시키거나 가차없이 발가벗기는 수모를
주어서도 안 된다.
권력의 세계에서도 우리들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황금률은 지켜져야
한다. 정의의 칼을 들고 불법을 행한 자를 향해 마주설 때라도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기대치를 상대방에게 먼저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 이
기본적인 룰을 망각한 권력은 사랑 없는 권력, 즉 폭력으로 변질될
위험을 안고 있다.
( 金日秀/고려대 법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