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가(南柯)의 꿈 ’책을 쓰고 삽화를 맡은 민건식씨(왼쪽)와 신동헌 화백.한평생 클래식음악을 벗해 온 두 사람은 “음악은 삶을 보람있게 사는 길을 가르쳐준다 ”고 입을 모았다.<a href=mailto:choish@chosun.com>/최순호기자 <

‘수송동 민대감’. 지금은 클리닉 ‘현업’에서 은퇴한 이비인후과 전문의 민건식(78)씨를 많은 오디오 애호가들은 그렇게 기억한다.

민씨가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서 ‘민건식 이비인후과’를 열 때다. 숙명여고가 수송동에 있던 시절, 민씨 병원 앞 골목길은 학생들의 등하교 길목이었다. 학생들의 등교시간이면 민씨는 병원에서 골목을 향해 달아낸 스피커로 클래식음악을 틀었다. 청소년기에 클래식음악은 양약이요 보약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레코드(LP·CD)를 통해 음악을 재생하는 오디오 기기에 탐닉하는 매니아들에겐 민씨가 명명한 ‘오디오 매니아 10조’가 지금까지 화제다.

‘매니아(狂)’들의 심리를 족집게처럼 집어냈기 때문이다. ‘안 바꾸고는 못 배긴다’ ‘안사람의 잔소리가 늘어난다’ ‘집안 식구한테는 싸게 샀다고 말하고, 남들에게는 비싼 물건이라고 자랑한다’….

이 ‘민대감’이 책을 냈다. 나고 자란 이야기, 오디오와 음악, 음악과 건강, 가족, 여행, 악기 수업…. 특정 주제랄 것도 없이 오랜 세월 삭혀온 편편단상을 모았다. 그의 동생인 불문학자 민희식씨가 출판을 거들었다. 책의 삽화는 만화가 신동헌(75) 화백 솜씨.

“뭐, 대단한 책이라고…. 남들이 보면 ‘그것도 책이냐’고 할 겁니다. 친구들에게 돌릴 요량으로 비매품으로 몇백권 찍었다가, 더 많은 이들이 읽게 좀 제대로 찍으라는 성화통에 출판사를 붙여 다시 찍었어요.”

판형·두께·활자체부터 개인문집 풍인 민씨의 책을 읽노라면 절로 웃음이 난다. 친구의 턴테이블(LP 레코드를 돌리는 기기)이 탐나서 외제 승용차를 주고 덥석 맞바꾼 이야기, 아내한테 들킬세라 기기를 벽장속에 몰래 감춰두고 꺼내 틀다, 결국 이틀을 못넘기고 아내한테 들켜 도로 내보낸 이야기…. 그래도 마누라만큼은 절대 안 바꾼다고 사정하며 간신히 무마하곤 했었는데, 그 아내를 민씨는 최근 저 세상으로 떠나보냈다. 이 모든 게 일장춘몽일까. 민씨가 펴낸 책의 이름은 ‘남가(南柯)의 꿈’(신유토피아 간), 남가일몽이다.

민씨와 신동헌화백은 서울대 재학때 과학도들의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였던 ‘사이언티스트 교향악단’에서 클라리넷(민건식) 바이올린(신동헌) 연주자로 함께 하면서 평생 친구가 됐다. “(연주를) 못해도 저렇게 못할 수가 없다고, 한 여학생이 구박하는 통에 바이올린을 팽개쳤다”(신동헌)는 악단이다. 신화백은 바이올린을 손에서 놓았지만, 민씨는 진료 짬짬이 클라리넷 실력을 키워 부산시립교향악단과 떡하니 협연했다. 연주곡은 그 어렵다는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흐르는 곡). 민씨는 아코디언 연주실력도 수준급으로, 신화백이 토요일마다 해설을 맡아 진행하는 일산 돌체음악회서 연주하기도 했다.

민씨는 “음악의 리듬이야말로 사람 몸의 리듬”이라고 믿는다. 모차르트·하이든의 현악사중주를 늘 흥얼대는 신화백도 그렇지만, 민씨가 곱게 세월을 삭힌 비결은 음악이다. 민씨는 ‘모차르트가 내게 미친 영향’이란 글에서 “좋은 음악은 인생을 보람있게 사는 방법을 가르쳐준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