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광의 '지봉유설'에 보면 고추를 남만후추(南蠻胡椒)라 하고
왜국에서 건너왔기에 왜겨자(倭芥子)라고도 한다하고 초기에는 주막에서
조금씩 심어 소주에 타서 팔았으며 이를 마시고들 더러 죽었다고 했다.
한데 일본 문헌들은 두 갈래로 그 뿌리를 고증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조선을 칠 때 그 씨앗을 조선에서 들여왔다는 설과
임진왜란 후기에 담파고(淡婆姑·담배)와 더불어
파이두와이(波爾杜瓦爾·포르투갈)사람들이 전래시켜 남만후추를 줄여서
만초(蠻椒)라고 한다했다. 고추의 원산이 남아메리카요 콜럼버스의 대륙
발견 후에 유럽으로 전래된 것으로 미루어 포르투갈 사람이 일본에
전래시키고 그것이 왜란 중에 한국에 전래됐다고 보는 것이 순리다.
중국을 통한 전래도 추정해볼 수 있으나 명나라 때 식물사전인
「본초강목」에 고추가 실려있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일본 전래설에
기울게 한다.
일본에서는 고춧가루를 풀에 짓이겨 베나 종이에 발라 요즈음 파스처럼
아프고 저린 데 붙이면 낫는다고 했다.복통에는 배에, 두통에는 머리에
붙이고 감기에는 갈비뼈 셋째 넷째 사이에 붙인다는 등 그 용도가
다양하게 발달한 것을 미루어봐도 그렇다. 18세기 후기의 실학자
이규경은 왜란 때 왜군이 전략무기로 썼던 것이 고추의 전래동기일
것으로 추정했다. 유럽이나 중국의 중세 전쟁에서 후추 등 매운
열매(椒)의 풀이나 나무를 태워 매운 연기를 적진에 날려 교란시키는
병법이 있었음을 미루어 그렇다. 이라크·이란 전쟁 때에 적진을
교란시키는 겨자탄(芥子彈)도 바로 이 고춧가루 병법의 현대화랄 수
있다. 옛날 무덤이나 논물을 두고 가문이나 마을끼리 집단 싸움을 벌일
때 고춧가루를 뿌려 선공하는 사례도 없지 않았다.
한말 일본 세력이 득세하고 있을 때 울릉도 도주(島主)를 친일세력이
차지하자 거문도민이 주축이 된 민족 세력이 도주의 집으로 야간 습격을
했는데 고춧가루를 들고 가 미리 뿌리고 성사시켰다는 말을 당시 참여한
노인으로부터 들었다. 한동안 심했던 최루탄도 고춧가루를 화학화했다는
차이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제주도 한 병원의 노사갈등에서 진입하려는
노조측과 경비업체가 대결, 고춧가루 탄 물을 동이로 끼얹는 모습이
보도되었는데 고춧 가루 병법의 부활을 보는 것 같아 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