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근무하던 미술관은 특정 지역에 연고를 둔 대기업 그룹
소속이었다. 전시를 기획하고 작가를 선정할 때면 항상 그 지역 작가를
우대해주길 바라는 관장과 늘상 부딪치느라 마음고생이 심했다. 좋은
전시가 문제가 아니라, 자기 고향사람을 얼마나 챙기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관심사였다. 그 지역 출신이 아닌 내가 편할 리 없었을 것이다.

나는 완강한 학연과 지연, 온갖 '끈'으로 얽혀 정치판을 빼닮은 우리
미술계에서 당연히 고독감을 즐기면서 지내왔던 것 같다. 그러나
중심에서 벗어나고 정치와 권력의 핵심에서 빠져 나와야 제대로 일을 할
수 있고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모두들 중심을 향해 돌진할
때, 이런 저런 인연으로 죄 얽혀있을 때, 거기서 벗어나 삶의 경계,
모서리에서 새카맣게 견디는 것, 그런 게 사는 것이고 예술하는 일일
것이다.

그룹에 속한 우리네 미술관들 대개가 그 집안 가족들이 관장을 하면서
특정한 이해관계에 휘둘리는 편이다. 화단(畵壇)이나 대학도 그렇다.
대개 자기 학교 출신들을 추천하고 강사로 쓰고자 한다. 해서 온갖
끈들이 동원되고, 그 끈을 활용하려는 작가들로 부산하다. 미술계의 일부
원로, 이런 저런 감투를 쓴 이, 현란한 이념과 거창한 주제의식, 아찔한
사상으로 무장한 작업들을 내놓는 작가들, 혹은 삶의 목표가 지나치게
선명한 이들, 권력욕이 강한 사람들 일수록 더욱 그렇다. 제발 그림
그리는 작가들만이라도 정치판을 닮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깟 감투나
지위에 목매지 말고, 알량한 학연이나 지연으로 끼리끼리 뭉치고
휘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박영택·미술평론가·경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