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주시 장애인 요양시설 ‘한사랑마을 ’의 모의주택에서 자립생활을 하고 있는 4명의 중증 장애인들(왼쪽부터 신지은,이은정,신소희, 최주현씨)이 23일 오전 정원으로 산책을 나와 최지희(오른쪽에서 두 번째)생활교사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중증 장애인 요양시설 '한사랑마을'은 최근
요양소 한쪽에 가정집 형태의 모의주택 한 채를 마련했다. 자립을 원하는
중증 장애인들이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훈련하는 사관학교 격의
'자립생활 홈'이다.

이 모의주택의 첫 입주자는 20년 가까이 다른 이의 도움 없이는 살아본
적이 없는 중증 장애인 처녀 4명.
신지은(19)·이은정(20)·최주현(20)·신소희(20)씨 등이다. 이들은 지난
13일부터 단체 수용 시설을 떠나 3개월 예정으로 이 모의주택에서
독립생활을 하고 있다.

얼핏 보면 뇌성마비로 보행도 불편하고 온몸이 심하게 떨리는 이들이
과연 독립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4인1조가 된 이들은
22일 현재까지 10일 동안 서로 도와가며 자활(自活)의 꿈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에겐 하루의 삶 자체가 훈련과정이다. 우선 아침 저녁으로 침대에
오르내리는 것이 첫 번째 도전이다. 엎드린 채로만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신지은씨는 다른 3명이 각각 팔·다리·허리를 붙잡은 뒤 단번에 힘을
써야만 침대에서 오르내릴 수 있다. 처음엔 10분, 20분씩 걸렸지만 날이
갈수록 소요시간이 줄고 있다.

식사에서도 '협업(協業)'이 중요하다. 이번에는 뇌성마비 특유의 몸
흔들리는 증세가 덜해 음식을 흘릴 염려가 적고 팔이 자유로운
신지은씨가 나서, 밥과 반찬을 식판에 담는다. 팔을 전혀 못써서 식사 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던 이은정씨는 숟가락을 발에 끼워
식사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처음 1시간반 걸리던 것이 자립생활 나흘
만에 30분으로 줄 만큼 새로운 환경에 빨리 적응하고 있다.

식사 뒤처리에서도 '4박자'의 어울림이 중요하다. 신지은씨가 바닥에서
식판을 올려주면 이은정씨가 능숙한 발 솜씨를 이용해 전동 휠체어를
타고 싱크대 앞에 앉아있는 최주현·신소희씨에게 전달한다. 설거지는
주현씨가 식판을 잡아주고 옆에 있는 소희씨가 스펀지를 잡고 식판을
닦는 식으로 이뤄진다.

그 사이 발도사인 이은정씨는 냉장고 문을 발로 연 뒤, 반찬통을
냉장고에 넣고, 신지은씨는 엎드린 채 다른 친구들이 바닥에 떨어뜨린
밥알을 줍고, 4명의 칫솔에 치약을 짜준다. 빨래·청소·세수·용변 등
모든 일을 이처럼 1명 할 일을 4명이 나눠 하고 있지만 4명이 힘을 합쳐
못할 일은 없다.

영·유아부터 20대 성인까지 중증 장애인을 수용하고 있는
한사랑마을에서 만 18세 이상 성인 장애인은 30여명으로 전체 230명의
13%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의 가장 큰 꿈은 더 이상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홀로 살아보는 것이다.

중증장애인 신지은씨가 전동 휠체어를 타고도 들어갈 수 있도록 문턱 없이 자동문을 달아놓은 현관을 지나 모의주택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한사랑마을이 올해 이들을 독립시켜 사회로 내보내는 '자립생활
프로그램'을 만든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의사·담당교사의 심사 및
개별상담을 거쳐 신지은씨 등 4명을 첫 훈련생으로 뽑았다.

'자립생활 홈'은 실전 같은 훈련을 위해 일반 가정집과 똑같이 꾸몄다.
반투명 유리의 자동문으로 된 현관, 전동 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게
경사로로 된 입구, 휠체어 탄 채 설거지할 수 있도록 앞이 책상처럼 뻥
뚫린 싱크대, 앉아서 빨랫감을 넣을 수 있는 드럼 세탁기 정도를
제외하면, 보통 집과 다르지 않다.

낯선 사람들에게 유난히 수줍음을 많이 타는 여성스러운 성격을 지닌
소희씨는 아이 키워보는 게 꿈이라고 했다. 사지가 꼬이고 말 한마디
쉽게 안 나오지만, 시설 내 어린 장애아들을 볼 때마다 "아가야
아가야"라며 등을 토닥거리고 눈을 한시도 떼지 못한다고 한다.

지은씨는 항상 누워서 움직이지만, 붙임성이 좋아 봉사자와도 금방
친해진다. "몸이 힘든 건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고 더듬거리며 입을
여는 그는 "독립생활을 통해 언젠가는 내 힘으로 돈을 벌고, 힘든
사람도 도와주며 살고 싶다"고 했다.

올해 인근 삼육재활고교를 졸업해 4명 중 '최고학력'인 주현씨는
요즘엔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를 구입, 근처 삼육재활원에 있는
남자친구와 문자메시지 주고받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4명의 리더인 그는 수시로 방 회의를 주재한다. 요양시설에서 24시간
도움을 받을 때와 달리, 그날의 일정과 각자의 역할 분담 등은 이 회의를
통해 결정된다. 주현씨는 "우리끼리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다"며 "몸이 힘든 것은 4명이 도와가면서 지내면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했다.

이들의 자립생활을 전담하고 있는 최지희(崔芝姬·여·32) 생활교사는
"중증장애인들이 아무것도 못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다만 남들보다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라며 "장애인들과 함께 살아갈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우리 사회가 오히려 문제"라고 했다.

'자립생활 홈'의 훈련생들은 오는 26일 열리는 개소식 준비로 바쁘다.
이 개소식에는 '자립생활 프로그램'을 후원하고 있는 우체국
우정사업본부와 보건복지부, 장애인시설협회, 각종 복지시설 관계자 등
200여명이 초청될 예정이다.

다음달부터는 바깥생활 연습이 시작된다. 광주 시내에 나가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사고, 인근 분당 지하철을 봉사자의 도움 없이 타고
귀가하는 훈련 등을 하게 되는 것이다.

3개월의 훈련이 모두 끝나면 이들은 인근 광주시나 분당에 주택을 얻어
1~2년 정도 따로 살아본 뒤, 이후 영구임대 아파트를 얻어 완전히 독립된
삶을 살아가게 된다. 한사랑마을 윤희(尹姬·여·27) 사회복지사는
"이번 4명을 시작으로 성인 원생들을 차례로 독립시켜 나갈
생각"이라며 "이들의 자립생활 훈련을 지켜보면서 다른 성인 원생들도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다"고 말했다.

◆국내 장애인 현황/ 중증 35만명…3만명만 시설에서 생활

2002년 3월 말 현재 국내 등록 장애인 117만8471명 중, 시력이나
팔·다리 등의 운동능력 전체 또는 일부를 상실한 1~2급 장애인의 숫자는
35만8000여명에 이르고 있다.

이들을 통칭해서 ‘중증(重症) 장애인’이라고 부른다.

1급의 경우 팔 전체 또는 다리 전체가 완전히 마비돼 주변 사람이
도와주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1급 장애인은 약
12만6000여명으로 이 중 3만3000명이 각종 장애인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 2급 장애인은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만 운동 능력이 일부
살아있는 경우가 많아, 장애인시설에 수용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보건 당국은 최근 성인이 된 1급 장애인들의 경우 시설 생활보다
독립생활을 유도하는 쪽으로 정책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한사랑영아원의
이효숙(李孝淑) 원장은 "선진국처럼 독립가정을 꾸미게 하고 자원봉사자
등을 통해 돌보는 쪽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