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외교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선 외교시스템의 대대적인 수술이
불가피하다. 외교 전략의 수립에서 집행, 조직 관리와 운영 등
외교시스템 전반이 구조적인 부실에 신음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부의
평가를 빌릴 필요도 없다. 일선 외교현장에서 일하는 외교관들 스스로가
입만 열면 "이대로는 안 된다"라고 토로할 만큼 심각한 상황이다.
4강 외교, 유엔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 세계 13대 교역국, 186개국
수교…. 지표나 수치로 나타난 한국의 국제화 수준이나 국제지위는
화려해 보인다. 그러나 막상 대외 관계의 1차적 책임을 지고 있는
외교통상부나 재외공관은 속빈 강정처럼 허약한 상태다. 정치권 풍향에
따라 흔들려온 외교의 정체성 위기, 적은 인력과 국내적 무관심,
외무고시 기수(基數)에 따른 서열주의, 무(無)경쟁과 무사안일 등….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는 외교통상부 조직과 인력을 변화된 외교
수요(需要)에 맞춰 과감히 구조조정하는 일이다. 현재 외교부 본부의
57개과(課)의 평균 인원은 5~6명 정도. 그나마 대부분의 과가 과장을
제외하고는 해외 근무 경험조차 없는 초임 외교관들로 구성돼 있다.
이들에게 외교사령탑 역할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재외공관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125개 재외공관의 평균 직원 수는 6명
안팎으로, 이 중 절반을 넘는 70여곳이 직원 수 3~4명의 초미니
외교공관이다. 수준 높은 해외 정보 수집과 외교협상, 양질의 영사
서비스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외교관 수를 대폭 증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작은
정부'라는 세계적·시대적 추세도 그렇고, 정치권이나 국민 정서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교부 본부와
재외공관의 군살을 빼는 구조조정, 외교 수요에 대한 냉정한 평가, 이에
바탕을 둔 외교 조직 및 인력 배치가 이뤄져야 한다.
이 같은 자구(自救)노력이 선행될 때, 외교관 증원과 조직 증설 같은
주장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급속도로 번지고 있는 젊고
유능한 외교인력의 탈출 현상을 막고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서라도 외교
개혁은 늦출 수 없는 과제다.
그러나 외교 개혁은 정부 또는 외교부 자체적으로 추진할 사안이 아니다.
지난 10년 동안 외교부 자체적으로 실시한 구조개편이나 개혁의 경우,
당초 목표로 했던 성과를 거둔 적이 별로 없다. 지난 91년 '외교부 내의
싱크탱크' 같은 역할을 하겠다고 만든 '외교정책실'이 거꾸로 유엔과
다자(多者)외교 등 일선 집행기관으로 변질됐고, '외교관 계급제
폐지'라는 거창한 목표 아래 작년 8월 개정·시행된 외무공무원법은
거꾸로 직위별로 세분화된 신종 계급·직급을 양산했을 뿐이다. 결국
정부와 민간 등이 함께 참여한 가운데 미래의 외교수요를 예측, 이에
걸맞은 21세기형 외교조직으로 탈바꿈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에서도 첨단 과학기술 발전과 병행하고, 새로운
국제질서에 부응할 수 있는 외교망을 건설하기 위한 논의가 한창이다.
이들 나라에서도 기존 관료조직의 강한 저항과 반발 때문에 쉽게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지만 참고할 만한 점들이 적지 않다.
미래형 외교의 핵심 개념 중 하나가 '이젠 외교가 외교관들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외교부 개혁부터 외교전략 수립까지, 기존
외교관료 조직과 민간의 활발한 교류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국가이미지 제고를
위한 '대중외교(Public diplomacy)' 강화나, 전통적 의미의 재외공관을
대체할 첨단기술형 네트워크 구축 등이 좋은 예다.
한국 외교는 현재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 朴斗植논설위원 dspark@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