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TV 재연프로그램 ‘깜짝 스토리랜드 ’가 지난 13일 방송에서 고전소설 ‘설공찬전 ’을 괴기소설인 것처럼 소개해 논란을 빚고 있다.

여름철을 맞아 각종 재연 프로그램들이 공포감을 조성하는 아이템으로 시청률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SBS TV ‘깜짝 스토리랜드’가 고전 소설인 ‘설공찬전(薛公瓚傳)’을 전형적인 괴기소설인 것처럼 소개하면서 논란을 빚고 있다.

‘깜짝 스토리 랜드’는 지난 13일 ‘역사 속의 비화-설공찬전’이라는 제목으로 “역사상 가장 공포스러운 이야기인 ‘설공찬전’의 비밀을 공개한다”며 방송을 시작했다. 주된 내용은 밥을 먹지 못해 죽은 설공찬의 혼령이 삼촌 설충수의 아들 공침의 몸에 수시로 들어가 괴롭히는 장면, 혼령을 퇴치하기 위해 찾아온 퇴마사조차 공찬을 당해내지 못하고 나가 떨어지는 장면 등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책을 보고 있으면 귀신이 보고 있는 듯 하다” “오백년의 세월을 거슬러 되살아난 엑소시스트” 같은 표현으로 ‘설공찬전’을 괴기 소설인 것처럼 묘사했다.

하지만 실제의 ‘설공찬전’은 이런 방송과 달리 당시 정치 현실을 ‘혼령 소설’ 형태로 비판한 문제작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학계의 평가다. 공침의 몸을 빌린 공찬의 혼령이 저승 경험을 전하는 방식으로 당시 정치적 인물들을 평가했으며, 그 중 중종 반정에 가담한 신흥 사림파를 비판한 대목 때문에 금서가 됐다고 학자들은 해석한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전반부에 혼령이 깃드는 장면만을 오싹한 분위기의 화면과 함께 소개함으로써 국문학사적으로 큰 의의를 갖는 소설의 가치를 폄하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비판을 받고있다. 이 소설은 1997년 국사편찬위원회가 ‘묵재일기(默齋日記)’ 낱장 속면에 기록된 내용을 발굴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

이날 방송이 나간 후 인터넷 게시판에선 제작진이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고전소설의 성격을 왜곡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시청자 정인섭씨는 “‘설공찬전’은 일종의 정치소설이라고 알고 있는데, 삼촌에게 원한을 품어 사촌을 괴롭힌다는 엉뚱한 이야기는 어디서 나온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연출자 이재준PD는 "여름철을 맞은 시청자에게 흥미와 서늘함을 주기 위해서 괴기스러운 분위기로 내용을 가감한 측면이 있다
"며 " '설공찬전' 전문 연구자 이복교 서경대 교수의 자문도 충분히 구했다"고 말했다.

이복규 교수는 “이 프로그램이 균형적인 시각을 갖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다큐멘터리가 아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이 프로그램이 ‘설공찬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