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중산층 아내가 우연찮게 빠져드는 불륜 관계를 차분하면서도 감각적인 영상에 담은 ‘언페이스풀 ’.

'나인 하프 위크'(86)로 미키 루크와 킴 베이싱어를 단번에 세계적인
섹스 심벌로 끌어 올렸던 '관능' 묘사의 베테랑 애드리안 라인 감독이
또 한 편의 '은밀한 이야기'를 들고 돌아왔다. 22일 개봉하는
'언페이스풀'(Unfaithful·22일 개봉)이다.

애드리안 라인 감독은 남녀의 사랑과 섹스, 그중에서도 '위험한
관계'를 다루는데 일가견이 있다. 글렌 클로즈의 광기, 마이클
더글라스의 자중지란(自中之亂) 연기가 압권인 '위험한 정사'(87),
데미 무어와 로버트 레드포드의 매력을 고스란히 뽑아낸 '은밀한
유혹'(93) 등이 모두 이 감독의 손을 거쳤다.

이번 '언페이스풀'도 유복하고 단란한 중산층 아내와 20대 청년의
불륜, 그리고 그것이 초래하는 치명적 결과를 그린 영화다. 다이안
레인과 리차드 기어가 부부역을 맡은 이 영화는 흔히 말하는 '에로틱
스릴러'. 1960년대 프랑스의 새로운 영화 운동 '누벨 바그'를
이끌었던 클로드 샤브롤(Claude Chabrol)의 대표작 '부정한 여인'(La
Femme Infidele·68)을 리메이크한 이 영화의 줄거리만 떼놓으면 낯익다
못해 상투적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 평범한 소재를 주무르는 감독의
솜씨는 평범하지 않다.

결혼생활 11년째인 코니(다이안 레인)는 자상하고 능력있는 남편
에드워드(리차드 기어), 아들과 함께 뉴욕 교외에서 무엇하나 부러울 것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런데 어느 바람불던 날, 시내 거리에서 20대
후반의 프랑스인 서적중개상 폴(올리비에 마르티네즈)과 몸을 부딪쳐
쓰러진다. 이 우연한 '접촉'은 평온하게 살던 한 주부를 욕망의
벌판으로 불러내는 계기가 되고, 남편 몰래 이어지는 위험한 관계는
끔찍한 악몽을 부른다.

영화는 담담하고 잔잔하게 사건의 진행을 따라간다. 복선을 깔지도 않고,
시간 선후를 뒤바꾸거나 여러 사건을 섞지도 않는다. 대신 여주인공의
자기모순적(남편과 가정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젊은 청년의 육체에
매달리는)인 심리와 갈등, 그리고 안온한 일상 밑바닥에 깔려 있다가
샘물 솟듯 드러난 무의식적 욕망의 실체를 매우 섬세하고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아내에 대한 사랑과 아내의 외도에 대한 배신감 사이에서 괴로워 하는
리차드 기어와 새롭게 발견한 자신의 모습에 당혹스러워 하는 아내
다이안 레인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특히 다이안
레인이 보여주는 30대의 완숙한 여인상, 욕정과 죄책감이 뒤엉킨 그
얼굴이 영화가 끝나도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