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증권거래소는 1792년 월스트리트 68번지에 있었던 수백년생
버튼우드 나무 아래에서 탄생했다. 그 전까지 커피하우스 등에서
개별적으로 증권매매 업무에 종사하던 24명의 브로커들이 장외거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매대금의 0.25% 이하의 수수료는 받지
않는다'는 내용의 '버튼우드 합의서'에 서명한 것이 뉴욕
증권거래소의 기원이다.

처음엔 거래종목이 은행주식 두 종목과 국채 세 종목뿐이었고,
1817년에야 겨우 독립적인 건물을 갖출 수 있을 정도로 뉴욕
증시의 출발은 초라했다. 1838년 공황 여파로 펜실베이니아 주정부가
파산하면서 펜실베이니아 은행들이 줄줄이 무너질 때까지 미국의
금융 중심지는 필라델피아였다. 또 월스트리트가 미국 최대
금융시장으로 부상한 이후에도 오랫동안 세계금융의 중심지였던
영국 런던의 절대적인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 브로커들은 초창기부터 투기와 작전에 능란했다.
철도와 전신이 등장하기 이전 필라델피아 증시 브로커들은 이들이
역마차를 타고 몰려올 때마다 공포에 떨어야 했다. 뉴욕이
대(對)영국 교역의 중심지였던 덕분에 런던시장에 대한 최신 정보를
가지고 있던 월스트리트 브로커들이 필라델피아 증시를 뒤흔들면서
막대한 차익을 챙기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월스트리트는 런던을 제치고 세계금융의
중심지로 부상했으며, 지금까지 그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1980년대 금융시장 규제완화와 컴퓨터·통신기술의 발달로 인해
전세계적인 '주가(株價) 동조화' 현상이 현저해지면서 뉴욕
증시의 다우존스 주가지수는 곧바로 세계증시의 향방을 좌우하는
척도가 됐다.

최근 서울 증시의 종합주가지수가 연중 최저치 수준으로 떨어지는
등 금융시장이 크게 동요하고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 대부분의 지역이 주가 폭락사태로 아우성이다. 뉴욕 증시가
회계부정 스캔들 여파로 추락을 거듭하고 있는 탓이다. 주가에
관한 온갖 이론적·기술적 분석이 별무소용인 채 세계증시가 오로지
다우존스 지수만을 따라가는 것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그러나
세계증시의 정상화를 위해서라도 뉴욕 증시의 반등을 학수고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