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국회에서 장상(張裳) 국무총리서리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것은 42년 만의 일이다. 헌정사(憲政史)에서는 일곱 번째다.

총리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처음으로 부결된 것은 지난 1948년 7월 27일,
제헌국회 첫 회기 때였다. 조선민주당 부당수 출신의 제헌의원이었던
당시 이윤영(李允榮) 서리는 총 투표수(193표) 중 30%(59표)의 찬성밖에
얻지 못했다. 이윤영 서리는 그 후로도 제헌국회(1950년 4월 6일)와
제2대 국회(1952년 10월 17일)에서 두 번 더 총리서리로 임명됐지만,
그때마다 국회에서 부결됐다. 백낙준(白樂濬·2대 국회·1950년 11월
3일)·이갑성(李甲成·2대 국회·1952년 11월
20일)·김도연(金度演·제5대 국회·1960년 8월 17일) 서리도 국회의
동의과정을 통과하지 못했다.

지난 1960년 8월 19일 장면(張勉) 전 총리가 국회의 동의과정을 통과한
이후에는 총리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적이 없다. 따라서 장상
서리는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의 3공화국 이후 국회 동의를 받지 못한 첫
총리서리가 됐다.

한편,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이승만(李承晩·5번)·
윤보선(尹潽善·1번) 전 대통령에 이어 자신이 선택한 총리가 국회에서
신임을 얻지 못한 세 번째 대통령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