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네마 천국'을 본 이라면, 허름한 시골 극장 영사실에서 필름을
돌리던 따스한 미소의 영사기사 '알프레도 아저씨'를 잊지 못한다.
전통적으로 남자들의 영토로 여겨져온 영사실에 최근 20대 여성 여러명이
첫발을 내디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정탄다는 이유로 여자들은
영사실에 발을 들여 놓지도 못하게 했어요. 도제지망을 하려해도 '아니,
여자잖아. 필름을 제대로 들기나 하겠어?'라며 받아주지 않는 곳도
있었어요." 지난 6월 멀티플렉스 체인 CGV에 공채 입사한 이정화씨의
경험이다. 그러나 이제 달라진 현실이다. CGV가 공채한 영사 기사 중
젊은 여성 5명이 포함됐다. CGV는 이보다 앞서 지난 1월 국내
멀티플렉스로선 최초로 여성 영사기사 김지연(23·인천점)씨를 채용했다.
남들이 편안하게 앉아 팝콘을 털어넣으며 울고 웃는 동안 영사기사들은
이들의 뒷모습을 내려다보며 영화 한편이 무사히 상영을 마치도록
노심초사 한다. 매일 영화를 틀면서도 정작 감상하기는 쉽지 않은 직업.
남자들도 힘들다는 이 세계에 뛰어든 여성들의 생각과 꿈은 무얼까.
CGV첫 여성 영사기사 김지연씨를 비롯 이정화(26·명동점),
정선미(24·대전점), 장재은(25·구로점) 등 4명이 모처럼 한자리에
만났다.
이들이 모여 앉은 영사실은 "긴팔 옷을 입어야 하지 않을까"할 정도로
냉방이 잘 되어있었다. "온도가 높으면, 필름이 늘어 붙어서 영사
사고가 날 위험이 있기 때문"이란다. 더위나 추위 같은 건 문제가
아니다. 정작 어려운 것은 영화가 이상없이 상영되도록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중압감이다. 3교대로 근무하는 이들은 낮이든 밤근무든 영화 시작
1시간 전에 출근, 기계와 필름 상태를 점검한다.
"영화 시작할 때마다 포커스를 새로 맞춥니다. 화면의 떨림이나 자막,
사운드도 체크하죠. 멀티플렉스는 각관 마다 영화가 시작하고 끝나는
시간이 달라서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을 여유도 없어요. " 먼저 일을
시작한 김지연씨가 말문을 열자, 정선미씨는 뛰다시피 다니다 기계에
부딪쳐 왼쪽 팔에 커다란 멍까지 들었다고 보여준다.
영사 기사는 단순히 기계만 다루는 일이 아니다. 영사기사 자격증도
있다. 멀티플렉스 영사실엔 영사기사 2~4명과 '스태프'라 부르는 기사
견습생들이 함께 일한다. 이번에 CGV에 신규 채용된 이들도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이상 도제 기간을 거쳤다. 이들 넷의 '전력'은 모두
제각각. 정선미씨는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 정당 사무실에서
근무하다 영사기사로 업종을 확 바꿨다. 이정화씨는 고교 졸업 후
"영화를 실컷 보기 위해" 영사기사가 됐다. 그러나 영사실 '입성'은
쉽지 않아, 종로와 서울 변두리 극장에서 수차례 거절을 당했다. 어느
극장에선 1주일 동안 영사실에는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입장권만 팔게 해
중간에 그만 둔 적도 있다.
김지연씨는 디지털영상학을 전공했다. 원래 음향에 관심이 많았다.
"옛날에는 '내가 이걸 어떻게 배운 건데'라며 영사기술을 잘
가르쳐주지 않는 사람도 많았다고 들었는데 막상 들어와보니 전혀
다르다"며 "왜 이런 건 안물어보냐며 적극적으로 가르쳐주는
분위기"라고 전한다.
장재은씨는 고교 때 영화에 빠져든 뒤 대학 시절 영화 동아리 활동을
했다. 졸업 후 부천국제영화제 기술팀에서 일한 것이 인연이 돼 아예
영사기사의 길로 들어섰다. "곧 디지털 영사기도 도입되는 등 열심히
공부해야할 상황이지만 하루하루가 너무 보람차다. 5년, 10년 뒤에도 이
일을 하고 있을 것이고 아마 한국 최초의 영사실장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자부한다.
영사실에서의 하루 하루가 즐겁기만한 이들. 정선미씨는 "휴일에도
극장에 들러 기계를 만져볼 정도로 영사기와 사랑에 빠져, 3년을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지기까지 했다"고 웃는다. 근무 끝나면 영사기 닦으면서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너무 고생했구나. 오늘도 사고없이 수고
많았다"고 말을 건넬 정도다. 이들은 영사기사 일이 "섬세함과
정확함이 제일 중요하다"며 "힘만 좀 있으면(웃음) 여성으로서 매우
도전해볼 만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