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맹퇴치운동가 다카노 마사오(63)씨는 언제나 흰 티셔츠를 입고
다닌다. 하루 종일 비가 뿌리던 23일도 그랬다. 셔츠 앞가슴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인간선언 夜間中學 다카노 마사오'. "글을 배워 진정한
인간으로 살자"고 외치며 일본 전역을 떠도는 그가 서울에 왔다. 1998년
9월부터 99년 2월까지 서울에서 보낸 180일 동안의 일기를 엮은 '마음의
조국, 한국'(범우사)을 펴내서다.
"영양실조로 도쿄 거리에 쓰러져있던 일일곱살의 저를 거둬 처음 글을
가르쳐준 분이 한국 분이었습니다. 전쟁고아였던 나는 도둑질과 날치기,
싸움질 속에 자랐죠. 한국인 넝마주이 할아버지가 저를 데려다
돌보아주시면서 비로소 내 이름을 쓸 수 있게 됐습니다."
싸늘하게 식은 할아버지의 주검이 구청 트럭에 실려 떠나가던 날 그는
다짐했다. '그저 먹기 위해 살지는 않겠다'고. 스무살에 야간중학교에
들어가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66년 행정관리청이 전국 야간중학교의
폐교를 문부성에 권고했다는 신문 기사는 그의 삶을 전환시켰다.
'야간중학 증설운동'을 이끌며 문맹퇴치운동을 병행했다. 결국 그는
6·3년제 야간중학 의무교육제도를 실행하게 했고, 그 공로로 93년
도쿄변호사회가 주는 인권상을 수상했다.
다카노씨가 한국을 처음 찾은 것은 4년 전. 그에게 일본 글을 읽고 쓰게
가르쳐준 할아버지의 모국어는 어떤 것일까 궁금했고, 그를 닮았을
한국인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우연히 찾아든 성공회 어머니학교는
'문맹퇴치운동가'인 그를 감동시켰다. 나이 지긋한 할머니들이
초등학교 책을 읽으며 열심히 글을 깨치는 모습에서 남다른 감동을
느꼈다. 한국에 있으면서 그는 틈틈이 인사동에 나가 서툰 한국말로 문맹
퇴치의 중요성을 외치기도 했다. 반응은 극단적이었다. 침을 뱉는 사람,
손가락으로 가슴을 찌르며 전쟁의 책임을 지라고 소리치는 사람. 반대로
묵을 데가 없으면 우리 집에 가자고 팔을 잡아끄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었다. 솔직하면서도 인정이 풍부한 한국인들 모습에서 그 옛날
넝마주이 할아버지가 자신을 거둘 때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었다는
다카노씨. "세계 10억명 문맹인중에 80%가 아시아인이라는 사실은 슬픈
일"이라고 말하는 그는, "아직 글을 깨치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가 희망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