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과 관공서처럼 공공 성격을 지닌 시설에서 담을 없애자. 아파트 단지
같은 동네 시설들이라면 적어도 밖에서 들여다 보이는 투시형(透視型)
또는 푸른 나무 담장을 하자.
이렇게 하면 쓸모있는 곳에 쓸만한 공원이 부족한 우리 도시에 엄청난
공원이 공급될 것이다. 서울은 시민 1인당 공원면적이 15.02㎡로서
숫자상으론 외국 도시와 큰 차이 없는 것 같으나 일상 가까운 곳에서
쉽게 쓸 수 있는 공원은 턱없이 모자란다. 쓸만한 공원을 부디 나누어
쓰자. 잘 가꾸어놓은 담장 내의 공간들, 나누어 쓰면 더 넓어질 것
아닌가.
담을 허물면 시민 통합도 자연스럽게 일어날 것이다. 시민과 관공서의
보이지 않는 거리감도 줄어들 것이다. 관료들의 특권의식도 없어지고
서비스 정신이 늘 것이다. 시민정신을 가장 높이 여겨야 할 대학인들이
시민 마인드를 갖게 될 것이다. 이기주의가 줄어들고 동네 의식이 높아질
것이다.
'티끌모아 태산' 효과를 낼 수도 있다. 아파트가 거의 절반인 서울의
경우 효과는 지대할 것이다. 서울의 25개 구(區)에 대학 없는 구는 거의
없다. 구청, 의회, 각종 회관, 동사무소 등 관공서는 대개 시민 발길 잘
닿는 '요지'에 있다.
관리 문제 때문에 담을 없애지 못한다고? 어차피 '보안'은 건물 내에
국한된다. 옥외의 관리는 쓰는 사람만 잘 아껴서 써주면 큰 문제 없다.
월드컵 기간 중에 시민들이 보여주었던 시민 정신이 꼭 축제 때만
있으리라는 법이 없지 않나. 사람 발길이 많이 닿으면 사람 눈길도 늘고
오히려 안전해진다. 담치고 안전 사각지대 만드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
'담장'은 사실 한국의 독특한 문화 중 하나다. 담을 치고 영토를
확보해야 은근히 안심이 되는 농촌문화, 위계 문화, 영역 문화의
소산이기도 하다. 그러나 적어도 도시에서는, 적어도 공공시설에 대해서
만큼은 영토 문화를 허물어야 우리 도시, 우리 시민의 미래가 있다.
일찍이 도시가 발달된 서구의 도시문화는 담없는 문화다. 그들이 담장을
싫어해서가 아니라(그들도 특권층은 담 치기를 꽤 좋아하는 편이다),
그렇게 해야 많은 사람들이 적은 공간을 효과적으로 또한 적대적이지
않게 쓸 수 있었기 때문에 생긴 지혜였을 것이다. 특히 서구의 관공서나
대학들은 도시 한가운데 나 앉아서 도시의 길들이 그 사이로 다니는
경우가 허다하다. 딱히 '무슨무슨 단지'라거나 '어디어디
캠퍼스'라는 개념이 없는 것이다.
담을 뺑 돌아치고 사방에 주차 해놓고 건물은 그 안에 들어서는 발상도
획기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너무 턱이 높다. 너무 '영토적'이다. 부디
건물은 길가로 나와서 시민들과 친해지고, 남는 공간은 열어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쓸 수 있도록 발상을 바꾸자. 도시의 공공성이다.
최근 몇몇 지방도시, 몇몇 동네에서는 담 없애기 운동을 한다. 대개
단독주택이나 다세대주택 동네다. 물론 이것도 반가우나, 더욱 필요한
것은 공공시설의 담을 없애는 일이다. 공간 활용의 효율을 높이고, 특권
의식을 없애고, 열린 정신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공간문화를 만들자.
분명, 사람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사람을 만든다. 담을 허물어
'우리'가 되자.
( 金鎭愛 서울포럼 대표·2020기획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