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화제도 많았던 2002프로야구 전반기가 끝났습니다. 잘난 팀은 잘난 팀대로, 못난 팀은 못난 팀대로 후반기를 준비하고 있지요. 그런데 전반기 그라운드에서는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요. 잘 알려지지 않은, 그러나 재미있는 일화 몇 토막을 모았습니다.
○…한화 송지만이 영어 때문에 낯을 붉혔습니다. 안타 한 개를 헌납했지요. 이른바 '아이 갓 잇(I got it)'사건입니다. 지난 7일 대전 삼성전 더블헤더 2차전. 8회초 2사 2루에서 삼성 대타 김종훈이 친 타구가 2루수와 우익수 사이에 높이 떴습니다. 평범한 플라이였죠. 그런데 이 타구가 바가지 안타가 되고 말았는데요. 송지만의 느닷없는 "I got it" 외침 때문이었습니다. 임수민은 순간 당황했던 거지요. 평소엔 다 콩글리시로 '마이볼(my ball)'이라고 하는데, 난데없이 영어식인 "I got it"이란 말이 들려 멈칫했던 겁니다. 송지만의 설명은 한술 더 뜹니다. "소리를 질러놓고 나도 놀랐다. 텅 빈 그라운드에 내 목소리가 메아리치는 바람에 머리가 멍해졌다"고 하더군요. 이것도 설화(舌禍)인가요?
○…전남 순천이 고향인 기아 이현곤은 지난 4월 부모님과 함께 광주시 상무지구에 아파트를 구했는데요. 어느날 경비 아저씨로부터 기절초풍할 얘기를 들었습니다. "김성한 감독이 3층에 사는데 인사는 했어?" 아차, 했지만 물은 이미 엎질러지고 말았습니다. 호랑이굴에 제발로 들어간 격이지요.
이현곤이 워낙 안전운행을 한 덕분에 우려했던 '엘리베이터 조우'는 없었답니다. 그런데 딱 한번 아파트 현관에서 김 감독을 만났다는군요. 이때 이현곤의 태도가 어땠을까요. 그 자리에 얼어붙어 김성한 감독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허리를 90도 상태로 유지했다네요.
○…올 전반기 유난했던 빈볼 시비 속에 엉뚱한 대화 한토막. 지난 6월 21일 잠실경기서 퇴장당한 LG 최창호에게 사구를 맞았던 기아 장성호가 주인공입니다. 장성호가 다음날 덕아웃서 경기를 준비하는데, 정재공 단장이 다가와 위험한 농담을 건넸죠. "아들이 밖에 나가 때리고 오는 게 낫지, 맞고 오면 싫다더니 참말이네. 넌 사내랍시고 딱 맞으면 울컥 때려주고 싶은 생각이 안드냐?" 그런데 장성호의 기발한 대답이 걸작입니다. "전 딱 맞고 나니 벌컥 아프다는 생각 밖에 안들던데요." 우문현답입니까, 현문우답입니까.
○…현대 박경완은 전반기 내내 눈물겨운 엽기행각(?)을 벌였다는군요. 극심한 타격 슬럼프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별의별 방법을 동원한 것이지요. 잘 나가는 선수의 방망이를 빌려 쓰거나 테마음악을 바꾸고, 아예 타격 연습을 안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건 다른 선수들도 다 하는 거니까 별것 아니지요. 지방 원정 때 혼자 고속버스를 타고 오는 건 조금 특이한 방법에 속하구요. 결정판은 '속옷(팬티) 뒤집어입기'입니다. 박경완은 최근 '전반기 동안 줄곧 속옷을 뒤집어 입고 다녔다'고 슬쩍 고백하더군요. 아직은 별무효과지만, 후반기 성적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20점을 내줘도 안 바꾸는 겁니다.' 삼성 김응용 감독과 SK 강병철 감독이 지난 5월초 대구구장 덕아웃에서 엉뚱한 결의를 했습니다. 당시 2군에 있던 삼성 2년차 우완투수 이정호와 SK 3년차 기대주 엄정욱을 선발 맞대결시키자는 얘기였죠. '선발로 낸 다음 5회까지는 무조건 교체하지 않는다'는 조건이었습니다. 둘 다 직구 최고시속이 150㎞를 훌쩍 넘는 강속구를 자랑하지만 제구력이 안좋아 2군을 전전하는 신세였는데요. 배짱이 약한 둘의 단점을 고쳐주기 위한 제안이었죠. 선발 맞대결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엄정욱은 며칠 뒤 1군 무대서 한국프로야구 신기록인 156㎞짜리 직구를 뿌려 화제가 됐습니다. 그런데 진짜로 두 선수가 선발 맞대결을 벌였다면 어땠을까요. 상상력을 발휘해 보세요.
○…'좋은 성적을 내려면 고사를 지내라.' 외국인선수인 두산 레스, SK 페르난데스가 용병들에게 해줄 법한 말입니다. 두 선수는 시즌초 정성껏 고사를 지낸 후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지요. 레스는 두산이 출정식을 겸해 잠실구장에서 지낸 고사에서 돼지머리에 돈을 찔러넣고, 막걸리를 왼발과 마운드에 뿌려 화제가 됐었습니다. 페르난데스도 막걸리를 외야 펜스에 뿌리며 '홈런을 많이 치게 해달라'고 빌었다는군요. 그런데 전반기에 레스는 12승(다승 1위), 페르난데스는 홈런 18개(8위)를 기록했습니다. 야구장 지신들이 고사 지낸 정성을 어여삐 여긴 모양입니다. < 정리=스포츠조선 임정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