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일본 해운·조선업계는 한국전쟁 특수가 사라지자 서로 더 많은
지원을 받기 위해 정치인과 관리들에게 대대적인 뇌물로비를 벌였다.
일본 검찰은 당시 집권당인 자유당의 거물 사토 간사장과 이케다
정조회장의 뇌물수수를 포착하고 체포를 시도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요즘 우리나라에서 '청와대 요구설'로 논란을 빚은
'수사지휘권'이다.
당시 이누카이 법무상은 '구체적인 사건의 처분에 대해서는 검사총장(우리의
검찰총장)을 지휘한다'는 검찰청법에 따라 지휘권을 발동한다.
거물 정치인들의 수사는 즉각 중단됐다. 하지만 휴유증은 컸다. 이누카이
법무상은 여론의 빗발치는 비난에 굴복해 사임하고, 요시다 내각은
붕괴됐다.
김홍업(金弘業)씨 수사와 관련, 청와대의 수사지휘권 발동 요구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진 송정호(宋正鎬) 법무장관이 결국 경질됐다. 청와대측은
"송 장관이 먼저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으나, "싸워 죽는 것은
쉬우나 길을 내줄 수는 없다"라는 송 장관의 퇴임사는 청와대의 압력을
시사하는 의미 외에 달리 해석할 수 없다.
만약 수사지휘권 발동으로 홍업씨 수사가 중단됐을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나라 전체가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었으리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일선검사들 사이엔 송 장관의 후임자인 김정길(金正吉) 신임 장관을
이명재(李明載) 검찰총장을 견제하기 위한 카드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지휘권 발동으로 수모를 당했던 일본 검찰은 바바 요시츠쿠라는
걸출한 검사총장이 등장, 권력에 영합한 검사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하고
검찰의 기틀을 바로잡았다. 훗날 다나카 수상을 구속한 록히드 사건
수사를 통해 잃었던 검찰명예를 회복시켜준 검사들은 모두가 그의
수제자들이었다. 이명재 검찰총장의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