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이 공동개최했던 2002 월드컵을 일본인들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그리고 월드컵은 앞으로 한·일 두 나라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일본의 대표적인 지식인 3사람이 좌담을 갖고 한·일 월드컵을 결산했다.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게이오대 교수 =한·일 월드컵은 전반적으로는 대성공이다. 일본에서 여론조사로 “공동개최가 좋았나 일본 단독개최가 좋았나”고 물어보면 70% 이상은 공동개최가 좋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특히 양국이 다 예선을 통과한 것이 결과적으로 좋았다고 생각한다.
▲기타무라 마사토(北村正任) 마이니치신문 주필 =전세계를 상대로한 월드컵은 대 성공이었다고 본다. 티켓문제 등 일부 문제가 있었지만 훌리건 소동도 없었고 테러도 없었다. 한일 양국으로 봐서도 성공이었다. 특히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현재 상황’이 잘 보이게 됐다는 점도 중요하다. 지금까지는 현실은 보지 않고 ‘일본인들은 원래…’라고 한다든지, ‘한국인들은 원래…’라고 하는 선입견이 많았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한일간의 유대는 사실 아주 밀접하다. 이런 점들이 월드컵을 통해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사와키 고타로(澤木耕太郞) 작가 =물론 두분 말씀이 옳지만, 좀 더 구체적이고 미시적인 면으로 들어가면 일방적으로 단정하기는 힘든 면도 있다. 예를 들어, 튀니지와 일본의 경기때 한국인들은 일방적으로 튀니지를 응원했고, 일본이 이기자 실망하는 낙담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모습을 본 일본인들에게는 한일 관계는 아직도 갈길이 멀다고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한국인들의 친절을 본 사람들은 한일 관계가 개선되고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이번 월드컵은 한국과 일본의 여러 사람들이 서로에 대한 ‘경험치’를 높였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고 본다.
▲오코노기 =나는 일본인으로서도 이번 월드컵에 의미를 두고 있다. 한국이 혼자 4강에 갔어도 일본 국민들은 그다지 강하게 질투심을 보이지 않고 한국을 응원했다. 물론 속으로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일본인들이 그런 종류의 질투심을 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됐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타무라 =나만 해도 솔직히 한국이 이겨서 분하다는 생각도 있다. 그리고 그런 감정은 사실 나쁜 것이 아니다. 그것이 자국에 대한 응원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그 감정이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을 제어하는 능력은 필요하다. 물론 “본심을 감추고 ‘한국 이겨라’를 외쳤다”고 말하면 또 그럴 수도 있겠지만, 바로 그렇게 스스로를 제어하고 한국을 응원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젊은 사람들은 진심으로 한국을 응원했다고 생각한다.
▲오코노기 =사실 나이든 사람들 중에는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있었지만 정말 젊은 사람들 중에는 진심으로 한국을 응원하는 사람이 많았다.
사와키 =동감이다. 축구를 아는 사람들은 역시 이번에는 한국이 강했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강하다는 사실 때문에 한국에 대한 응원이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대구에서 열렸던 3위 결정전에는 정말로 일본의 젊은이들이 많이 와서 빨간 티셔츠를 입고 '대-한 민국'을 외치기도 했다.
▲오코노기 =빨간 옷까지는 안입어도 되는 것 아닌가? 사실 파란 일본 옷 입고 가면 '일본사람들이 한국 응원하러 왔다'고 생색낼 수도 있었을 텐데(웃음).
한국인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일본인에게 없는 것을 한국인들은 많이 가지고 있다. 또 반대로 한국인들이 없는 것을 일본인들은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에 그런 것을 서로 확인하게 됐다.
오랫동안 한국을 봐 왔지만, 이번에 나타난 에너지는 한국을 잘 안다는 나의 상상을 훨씬 넘는 것이었다. 한국의 내셔날리즘은 아직 청년기의 내셔날리즘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처럼 지나치게 조심하지 않는, 막대한 에너지가 한국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한국은 조금 더 여유가 있어도 좋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자국만 응원하고 다른나라 경기에 관중이 적다든지 하는 것 등을 스스로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가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사와키 =한국이 자국만 응원한 것은 아니었다. 3, 4위 결정전에서 정말 놀랍게도 관중석에 엄
청나게 큰 터키 깃발이 걸렸다. 그건 터키가 아니라 한국인들이 가져온 것으로, 정말 감동적이었다. 물론 3위 결정전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지 몰라도, 터키에 대한 한국인들의 따뜻한 마음은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이때는 승부를 떠나 함께 즐기자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오코노기 =한국측의 대일감정이 축구를 통해 대회 기간중에 다소 바뀐 것도 주목할만하다. 일본이 결승리그에서 지고, 젊은이들이 그 후에 한국을 응원하는 모습이 한국 언론에 보도되면서 한국민의 대일 감정이 호전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인상으로는 대회 전에는 한국인들은 일본보다 중국을 친구로서 생각했지만, 대회 중에 중국의 한국에 대한 불리한 보도등이 영향을 미치면서 ‘의외로 중국보다 일본이 괜찮은 친구일 수도 있다’는 분위기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
▲사와키 =꼭 일본인 입장을 떠나서 한국인들의 친절에 정말 감사한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유도 한국인들의 친절에 어떤 형식으로서든지 감사인사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광주 시합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갈 길이 막혀 곤란해하다 경찰관에 도움을 청했다. 경찰관은 지나가던 일반 승용차를 세워 줬고, 나는 ‘터미널까지 데려다 달라’고 말했지만, 차에 타고 있던 붉은 티셔츠의 두 청년은 오히려 최종목적지인 신촌까지 불평 한마디 없이 데려다 줬다. 이름 한번 묻지 못했지만, 정말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타무라 =아마 한국에서 사와키씨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많았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옆나라이면서도 싸우기만 하는 나라라고 지금까지 생각해 왔지만, 역시 세계 안에서 보면 많은 공통점이 있는, 그래도 비슷한 나라가 아닌가 싶다.
사와키 =실제로 서구인들에게 한국과 일본이 뭐가 다르냐고 설명해 주려면 설명해줄 방법이 없다. 이번에 아주 한국 구석구석을 다 다녀 봤지만, 집 모양이 조금 다르다는 것 외에는 다른 게 없다. 제주도 가봤지만, 아소산과 분위기가 비슷했다. 그만큼 한국과 일본은 공통점이 많은 나라다.
▲오코노기 =사실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는 상당히 깊지만 이런 현실에 양국 국민들의 의식이 쫓아가지 못했다. 여기에 월드컵이 의식변화를 가져왔다고 본다. 하나는 공통의 일을 치른다는 '동료-동반자 의식'. 그리고 또 하나는 결과적으로 생긴 일일지는 몰라도 한일간의 '대등의식'이다. 지금까지 일본에는 한국이 일본보다 떨어져 있다는 인식이 있었고, 한국에서도 역시 일본에는 아직 당하기 힘들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일본에서는 한국의 축구선전에, '이야, 최근 보니 한국은 IT산업도 앞서있고 구조조정도 일본보다 앞서 있다고 하는데…'라는 인식이 겹쳐지면서 한국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졌다.
동료의식과 동반자 의식, 동료의식과 대항의식은 결국은 공동체 의식으로 이어지게 돼 있다. 한일의 스포츠공동체라든지, 경제공동체라든지를 만들 수 있는 토대가 제공됐다고 본다.
▲기타무라 =한국인의 응원하는 모습이 TV에 매일 비쳤다는 것도 일본에서는 상당히 중요하다. TV에 비치는 한국인의 모습은 일본인의 모습과 구별되지 않았고, 게다가 모두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점은 아주 중요하다. 사실 일본의 TV에 비친 한국은 언제나 심각하거나 울거나 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사람 한사람의 밝게 웃는 얼굴이 전해졌다는 것이 크다.
▲사와키 =일본인들이 한국 선수들의 이름을 외웠다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 안정환이란 이름을 일본의 수백만이 외웠다. 일본 여성들이 안정환을 보고 전부 다 '핸섬하다'고 얘기한다. 그동안의 일본인의 자세로 비추어서 역시 한국인에 대한 이런 종류의 관심은 전례없는 경이적인 일이다.
다만, 아직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최근 쉬리가 히트하고 JSA가 히트했다. 그러나 친구에는 관객이 많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후 한국에 가서 영화를 꽤 많이 봤지만, 더 이상 일본에서 히트칠 수 있는 영화는 많지 않은 것 같다. 모두 일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깡패물 같은 것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한국영화는 다시 일본에서는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일시적으로는 안정환 등으로 붐을 이루겠지만, 열기가 식어가면 한국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오코노기 =그렇기 때문에 축구는 '이어주는' 역할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교류의 양적 확대가 이어지리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현재 한일사이에 현안이 되고 있는 FTA(자유무역협정)같은 것이 있다. 관세를 붙이지 않고 자본과 노동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경제 공동체가 5년 10년후에는 이뤄질 것이다. 일본과 한국은 민주주의, 시장경제, 미국과의 안전보장관계 등 3가지의 중요한 것을 공유하는 아시아에서 둘도 없는 나라다. 한일이 합하면 1억 7000만이 넘고, 세계 GNP 27%라는 거대 시장이 생긴다.
일본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살아가기 위한 방법으로는 그방법밖에 없다. 중국과는 정치체제가 다르고 중국의 시장경제는 제한된 범위다. 한국 역시 북한이라는 짐을 지고 있으니, 파트너가 있는 것이 좋다.
▲사와키 =한국민들의 응원이 일본에서 화제가 됐지만, 한국인의 내셔날리즘이 경계할 종류의 것이라고 느끼는 일본인들은 없는 듯 하다. ‘대단하다’고는 생각해도 ‘위협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좋겠다’라든지 ‘멋지다’는 종류의 관심이었다. “일본에서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지는 않을 거야”라든지, “역시 축구는 집에서 보는게 편하지”라는 반응이 많았다.
▲오코노기 =한국민들의 응원에 경계심을 느낀 것은 아마 일본이 아니라 북한일 것이다. 사실 한국에서는 북한에서 경기를 하자든지, 단일팀을 만든다든지 하는 얘기도 나왔고, 중국 관광객을 북한을 통해서 데려오자든지 하는 얘기도 나왔지만, 일본 입장에서 보면 그런 인식은 상당히 ‘사람좋은’ 시각이다. 일방적인 러브 콜에 불과하다. 북한측에서 보면, 한국이 그만큼 성대한 행사를 성공시킨다는 것은 국제적으로 그들의 지위가 저하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북한은 사실 민주주의 국가를 우습게 봤을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은 내부적으로도 이런저런 이론이 많고, 지역감정도 있고 이데올로기 문제도 있고 반미감정도 있고 해서 하나로 뭉쳐지기 힘들다고 보고 이런저런 방법으로 공작이 쉬울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한국민들이 이런정도까지 단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북한으로서는 문제가 심각하다.
▲기타무라 =사실 비슷한 나라라고는 해도 마지막날 해전이 일어난 시점에는 확실히 한국과 일본은 처해진 상황에 다르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일본의 젊은이들 입장에서는 한국젊은이들의 상황을 보고 자신들이 얼마나 외부의 위협 없는 평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오코노기 = 결국 역시 역사문제 등 두 나라 사이의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입장을 좀 더 알게 해 주는 교류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
■좌담자 약력----------------------------------------------------
◇기타무라 마사토(北村正任·61) 마이니치 신문 주필
-마이니치 신문 외신부장
-마이니치 신문 편집국장
-마이니치 신문 논설위원장 역임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57) 게이오대학 법학부 교수
-일본국제정치학회 이사
-현대 한국조선학회 회장
-한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 위원 역임
-저서;포스트냉전의 한반도, 김정일시대의 북한
◇사와키 고타로(澤木耕太郞·55) 작가
-르포라이터, 시인 겸 작가로 '일본 뉴 저널리즘의 기수'로 불림
-오야소이치논픽션상(79), 닛타지로문학상(81), 고단샤엣세이상(84)
-저서;심야특급, 인간의 사막, 버본 스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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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리=崔洽특파원 pot@chosun.com )
( 사진=요네다 겐지(米田堅持) 마이니치신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