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태풍 '라마순'의 뒤끝인 듯 서울 광화문 일대에 잠깐
햇볕이 쪼였다. 전국에 적잖은 수해가 있었지만 모처럼 시민들의
발걸음은 가벼웠고 표정도 밝았다. 차분한 분위기가 되돌아 온 게
역력했다. 이날 보니 한 달 이상 광화문과 시청광장의 고층 빌딩들을
뒤덮고 있던 월드컵 관련 대형현수막들이 말끔하게 걷혀 있었다. 태풍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제 정말 '벗어날 때'가 됐기 때문일까.

이날 낮 히딩크도 네덜란드항공 편으로 한국을 떠났다. 그의 인사는
'굿바이(Good bye)' 대신 '소 롱(So long)'이었다. 불어로
표현한다면 '아듀(Adieu·안녕)' 대신 '오르부아(Au revoir·또
봐요)'인 셈이다.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는, 작별사 없는 이별이다.
아쉽지만 보낼 때 우리네 심사는 '안을 수 있으면 님이 아니고, 가까이
있으면 님이 아니다'는 시구에 담긴다.

그를 보내는 국민정서는 대충 "고맙소, 잘 가시오"다. 그간 그를
붙잡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몽준 대한축구협회회장은
물론이고 그와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이 매우 간곡하게 소매를
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대세는 "보내주자"였다. 우리는
우리 가슴 속에 품었던 '님'을 시간의 흐름과 함께 비참하게
망가뜨렸던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다. 우리는 앞으로 '2002년 6월'의
감격과 신뢰가 영원하리라 믿고 싶지만 때론 우리를 자신할 수 없고
히딩크 스스로도 이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히딩크를 보내는 팬들의 마지막 심정은 사이버 레터에 가득 담겨
있다. "4년 뒤 다시 모여 기쁨과 환희의 눈물을…"이라고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의 해후를 기원하는가 하면, "그래도 무조건 가지
마세요"라는 사미인곡(思美人曲)파도 있다. 따지고 보면 이처럼 온
국민의 환송을 받는 따뜻한 이별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다.

훈장과 상금은 물론이고, 항공기 일등석 평생 탑승권, 명예박사,
명예시민, 자동차, 골프채…. 그에게는 한없는 선물들이 줄을 이었다.
항간의 농담은 '귀화와 개헌 그리고 대통령 출마'까지 들먹였다.
그러나 그는 훌훌 떨쳐버렸다. 1년6개월 동안 262일의 훈련과 39차례의
경기를 치렀을 뿐 미련을 가지면 진정한 축구인생이 아니라는 듯 조금도
멈칫거리지 않았다. 그는 진짜 '시인'이었다. 굳이,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 '낙화' 중에서)를 말하지 않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