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YMCA 대학생 회원들이 지난 5월 서울 종로거리에서 신용카드사의 무분별한 카드 발급을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신용카드 제국

(로버트 D 매닝 지음/ 강남규 옮김/ 참솔/ 1만8900원)

'신용카드 발행규모 1억장 돌파. 경제 활동 인구 1인당 4.3장.
현금서비스와 카드론 규모 100조원 돌파.'

우리에게도 신용카드는 생활의 한 부분이 되었다. 그러나 편리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신용카드와 관련된 부작용들이 최근
들어서 부쩍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신용카드제국'의 저자 로버트 매닝은 1980년대 이래로 미국 사회에서
불평등이 날로 확대되어 가는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소비자
신용' 문제에 주목하게 된다. 특히 카드빚 때문에 대학생 자녀를
잃어버린 사건들이 단순히 한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점을
알아차리면서 이 책을 내놓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신용카드 회사의 등장과 이 회사들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소비자들을 중독시켜 나가고 있는가를 생생한 사례와 객관적인 자료를
갖고 설명하고 있다.

미국 카드사들은 대학캠퍼스에서 마케팅을 집중적으로 펼치고 있다. 돈과
지출을 스스로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신용카드를 잔뜩 안겨 보라. 그들에게 현명함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신용카드 남용으로 인한 문제점이 발생할 때마다 우리는 개인의 부주의와
방탕함에 모든 책임을 돌려버리고 싶어 한다. 그러나 저자는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로 돌려버릴 수 없다는 점에서 고민을 토로한다. 술 권하는
사회에 대한 주의가 필요한 것처럼 신용카드 권하는 사회에도 경계가
필요하다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다시 말하면 개인이 책임져야
할 부분도 있지만 신용카드사와 사회도 완전한 면죄부를 얻을 수 없다는
점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한다.

신용카드사들은 때로는 자선사업가인 것처럼, 편리함을 회원들에게
제공하는 것처럼, 상류사회로 이끌어 주는 것처럼 소비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집요한 마케팅을 펼친다. 이런 강력한 마케팅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제대로 보호할 수 없다는 점에 안타까움과 어려움이 있다.

자본주의는 탐욕에 의해서 움직이는 사회다. 기업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신용카드 사용을 조장하고 이로 인해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버리기엔 인간의 강건함과 현명함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이 책에는 '신용카드에 대한 미국인들의 중독이 가져오는 결과들'이란
작은 제목이 붙어있다. 간발의 차이를 두고, 아니 어쩌면 거의
실시간으로 한국은 미국을 따라가고 있다. 이 책에 소개된 내용은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비자와 마스터카드는 전세계를 상대로
'글로벌 신용카드 소사이어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신용카드의 오용
및 남용으로 인한 사회문제는 미국, 영국, 일본, 스코틀랜드, 멕시코,
홍콩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 책은 어느 부분 하나 빠뜨릴 수 없을 만큼 가슴에 와 닿는 사례와
객관적인 자료로 가득 차 있다. 신용카드 확산과 더불어서 미국 사회에서
'벌어들인 범위 내에서 지출해야 한다'는 청교도 윤리가 어떻게
해체되기 시작하는가, 신용카드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 과정은 4장을 보면 된다. 대학생들을 상대로 무차별적인 마케팅이
낳는 부작용은 6장 캠퍼스의 신용카드 부분을 보면 된다. 신용카드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한다는 것은 젊은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노년기에 접어든 베이붐 세대들의 사례도 찬찬히 살펴보기를 원하면
9장을 볼 수 있다.

물론 저자의 시각은 개인이 신용카드 회사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점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그리고 저자의 시각은 빈자와 부자 자신의 대결과
갈등 구도로 세상을 바라본다. 때문에 다소 생소한 견해가 이곳 저곳에
드러난다. 그렇기 때문에 대안이 다소 부족한 단점도 있다. 우리에겐
신용카드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어렵다. 때문에 나는 '희생양' 논리를
지나치게 확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신용카드사들은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소비자들에
대한 공세를 퍼부을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가슴 아픈 이야기들은 더욱
늘어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정책을 맡은 사람들은 약자 보호 차원에서 신용카드사의 마케팅
활동에 적절한 제어를 생각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소비자들이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찾는 일이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이
신용카드 회사의 생리와 본질을 정확히 아는 일이다. 이 책은 소비자들이
신용카드사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 가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약간의
결점들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우수함을 인정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공병호·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gong@go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