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기간 중 서울시 외국인 관광안내요원으로 자원봉사한 무하마드
샤리크(35·무역업·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파키스탄)씨는 관광객들이
"어딜 가면 월드컵을 최고로 즐길 수 있느냐"고 물을 때마다, "무조건
광화문으로 오라"고 권했다.
"첫째, 극장보다 좋은 전광판이 5개나 있죠. 둘째, 붉은악마의 응원이
엄청나요. 셋째, 사건·사고·폭력이 없어요. 무엇보다 광화문에 오면
한국인의 특징을 단박에 알 수 있지요."
광화문은 월드컵 거리 응원을 통해 한국 축구의 성지(聖地)가 됐다.
광화문에는 희망에서 눈물로 곤두박질했다가 다시 승리로 도약한 열혈
축구팬들의 내력이 깃들어 있다. 97년 9월 프랑스 월드컵 예선전에서
붉은악마 500여명이 디지틀조선과 동아일보 전광판으로 경기를
'단관(단체관람)'한 것이 시작이었다. 프랑스 월드컵
한국―네덜란드전이 열린 98년 6월 21일 새벽에는 전날 밤 12시부터
모여든 열혈 축구팬 수백명이 '5대0' 대패에 목이 메 길바닥에
드러누웠다. 한·일월드컵 때는 이 수백명이 '연인원 295만명'으로
늘었다.
왜 하필 광화문인가? 97년 당시 북채를 잡고 응원을 주도했던 붉은악마
회장 신인철(34)씨는 "광화문은 우리나라에서 대형 전광판 5개를
한꺼번에 보며 많은 사람들이 응원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라고 말했다.
월드컵 대회 초반 대학로에 임시 전광판을 세우고 거리응원을 시도했던
모 대기업은 얼마 못가 장소를 시청 앞으로 옮겨야 했다. 90년대
중반부터 자연발생적으로 들어선 광화문 전광판들과는 달리, 임시
전광판은 높이가 낮아 여러 사람이 볼 수 없었기 때문.
특히 거리 응원 인파가 '메인 스크린'으로 꼽는 디지틀조선과 동아일보
전광판은 일반 전광판(LED방식)보다 화질과 색상이 탁월한 'CRT 방식'.
설치비가 100억원에 달했을 만큼 고가(高價)인 데다, 가정용 25인치 TV
1300대를 한꺼번에 켜는 것과 맞먹을 정도의 파워에 햇볕 환한 대낮에도
선명한 자연색을 유지한다.
월드컵 기간 중 한국전이 열릴 때마다 7차례에 걸쳐 벌어진 광화문 거리
축제는 여기에 '흥'과 '소리'를 보탰다. 축제를 주관한 디지틀조선
이벤트팀은 광화문 네거리에 빙둘러 고성능 스피커 150개를 설치해 '오
필승 코리아'를 열창하는 윤도현(30)의 목소리를 북쪽으론 청와대,
남쪽으론 시청, 동쪽으론 종로1가 국세청 건물, 서쪽으론 새문안교회 앞
육교까지 실어보냈다. 95년부터 광화문 빌딩 앞 공터와 디지틀조선
전광판을 연결해 미개봉영화제·록 콘서트·재즈 콘서트 등을 열며
축적한 노하우가 도움이 됐다. 붉은악마 지도부는 이들과 긴밀히 협의해
그때마다 상황에 맞는 응원을 했다. 서해 교전이 벌어진 3·4위전 때
'오 필승 코리아'를 '오 피스(peace·평화) 코리아'로 개사해 부른
것도 붉은악마 아이디어다.
98년부터 거리 응원에 참여해온 축구팬 김남호(37·회사원)씨는 인터넷에
올린 관전기에서 "(광화문 빌딩 앞에 앉으면) 축구의 함성으로 도시가
멈춰버린 것처럼 짜릿하다"며 "오디오 효과까지 완벽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