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의회는 지난달 21일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할 의무를 명시한 헌법
조항에 동물도 추가시키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유럽연합은 2005년부터
화장품업체의 제품 개발시 동물실험을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최근
의결했다. 동물에게도 생명체로서의 일정한 권리를 부여해 주자는 이런
논리는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확산돼 한국의 동물 애호가들에게도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외국의 동물실험 실태와 반대 이유, 한국
사정 등을 알아본다.

◆ 1년간 동물 5억마리 실험실 희생 =실험실에서 죽는 동물의 수는 1년에
약 5억마리로 추산된다. 1초당 약 16마리꼴로, 약품과 화장품 개발,
유해물질 독성 검사, 스트레스 실험, 생활용품 안전검사 등을 위해
병원과 제약업체, 대학 실험실, 제조업체 등에서 희생된다. 사용되는
동물 종류도 다양하다. 영국의 경우 2000년 한해 동안
생쥐·어류·새·원숭이·토끼 등 270만여마리의 실험동물을 희생시켰다.
번식력이 좋고 다루기 편해 전체 실험동물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쥐의
경우는 유전자 변형쥐도 '생산'해내 '생명산업'의 도구로 사용된다.
인간과 유사한 유전자 구조를 가진 원숭이류도 자주 이용된다.

◆"동물실험 지상주의가 판친다"=동물실험 반대론자들은 동물을 위한
동물실험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물실험 지상주의', 결과가
뻔한 실험, 기관의 생존을 위한 실험, 효용성이 불투명한 실험 등에
대해서는 기금지원을 중단해야 한다고 미국 동물실험반대모임(AAS)은
촉구하고 있다.

늙은 원숭이가 젊은 원숭이에 비해 학습능력도 빠르고 기억력이 좋다는
연구가 과연 필요할까? 미국 보스턴 대학과 관련 연구소는 당연하게
보이는 이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120만달러를 쏟아부었다.
록펠러대학에서 진행된 160만달러짜리 고양이 실험의 경우 마비시킨
고양이에게 신경자극을 줘 구토행위를 유도해내는 연구를 했다. 뿐만
아니다. 미국에서는 안약으로 인한 염증 조사에 토끼를 이용한다. 3일간
한쪽 눈에는 실험 안약을 넣고, 다른 눈은 그대로 둬 결과를 비교한다.
그러나 이 결과는 미국에서 큰 지탄을 받고 있다. 토끼와 사람의 눈이
조직, 눈물 작동 기제, 망막의 생화학적 특성 등에서 달라 실험결과를
인체에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도 이 방법이 각종 안약의
시판에 앞서 동원되고 있다. 이유는 한 가지, 그동안 염증을 경험한
소비자가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 실험이 안약 제조업체의 책임을
덜어줘왔기 때문이다.

물론 필요한 실험도 있다. 작년 12월 발사된 우주왕복선
엔데버호(號)에는 실험용 생쥐들이 타고 있었다. 우주비행사들이
무중력상태에서 뼈에 구멍이 뚫리는 병을 막기 위한 연구를 위해서이다.
우주에서 한 달간 생활하면 뼈의 밀도가 1~2% 감소해 인체에 타격을
주는데 연구진은 뼈를 보호하는 단백질을 주입한 12마리의 생쥐와 그렇지
않은 12마리 생쥐의 뼈가 각각 어떻게 변하는지 확인 중이다.

동물 실험 찬성론자들은 "그렇다면 실험을 위해 동물 대신 사람이
희생되어야 하느냐"고 반박한다. 하지만 반대론자들은 "페니실린도
실험용 쥐에게는 치명적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구해냈으며 AIDS
환자들은 동물실험 전에 자신들에게 개발 시약을 투약해 달라고 요청
중"이라고 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호주 철학자 피터 싱어가 1975년 펴낸
'동물해방'이란 책을 통해 동물실험의 종식을 촉구하면서 동물실험의
윤리성에 대한 본격적인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동물도
사랑·슬픔·고통·자존심 등 인간이 느끼는 감정과 사고가 가능한
생명체이므로 동물실험은 일정 범위 내에서 금지되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한 가지 예로, 1990년대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에서 실험대상이 된
아프리카 회색 앵무새 '알렉스'의 이야기는 지금도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어느날 밤 연구원이 실험실에서 퇴근하려 하자 병을
앓던 알렉스는 "이리 오세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미안해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요"라고 말했다는 것. 또 원숭이류들은 약
300개의 신호를 배워 인간과 의사소통도 가능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에 따라 최근에야 동물권을 존중하는 여론이 학계에 확산되고 있다.
1990년대 영국에서 심리학 과목을 신청한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
동물실험 선호도가 1학년보다는 2학년의 경우 더 낮아진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영국 동물학대방지협회(RSPCA)에 따르면 2000년
영국에서 사용된 실험동물의 수는 271만5000마리로, 1970년대의
절반수준으로 줄어드는 추세이다.

◆ 대체 실험방법 개발 중 ='동물복지' 선진국인 영국은 1986년 마련된
과학실험법을 통해 면허가 있는 연구자들에게만 동물실험을 허용하고,
동물실험운영위원회를 두어 연구기관들의 규정 준수를 감독 중이다. 또
'인간적인 동물실험'을 위해 '대체 실험법 개발' '고통의 최소화'
'실험규모 축소'의 원칙을 두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동물실험 대체 연구에 매년 630만파운드(약 115억원)를
지원하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실험동물의 수를 줄이기 위해
독성실험에 조건을 달아 제한하고 있다.

한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3000~3500만마리의 실험동물을 사용하는 미국은
1993년부터 부식제 실험을 할 때 토끼 대신 인공피부를 쓰도록 하고
있다. 캐나다는 포유류 대신 어류, 생쥐 대신 박테리아를 쓰는 등 고통을
덜 느끼는 동물이나 미생물을 이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동물의 반응을
본뜬 컴퓨터모델링이 동물실험을 대체하는 추세다.

◆한국은 ‘동물權’후진국

우리나라에서는 한 해 약 300만~400만마리의 동물이 실험에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한국 실험동물학회는 추산한다.

1999년 대학·연구소·제약회사 등 400여곳을 대상으로 동물실험 실태를
조사한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따르면 1998년 사용된 실험동물은
84만여마리에 이르렀다. 그러나 조사에 응답한 곳이 반에도 훨씬 못
미쳤으며 응답 수치도 실제보다 적었다는 평가이다. 조정식(趙貞植·55)
실험동물자원실장은 "각 기관이 실험동물 사용을 보고할 의무가 없어
수치 파악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험 동물 수가 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1999년의 경우 1987년(10만8480마리)과
단순비교할 때 12년 만에 약 8배 급증했다.

실험에 사용되는 동물 종류는 주로 생쥐·쥐·토끼·기니아피그 등으로
유전자 연구·해부·독성 검사 등을 위해 병원·대학·제약업체 등에서
사용된다.

한국에서는 '동물 권리'란 개념도 생소하고 동물실험 관련 법도 없다.
동물실험운영위원회가 동물실험을 철저히 감독해 문제가 있을 경우
연구비 지원을 줄이거나 끊는 미국 등 동물복지 선진국에 비하면
'동물실험 후진국'인 셈이다.

식약청에 따르면 동물실험이 이뤄지는 기관들 중 형식적으로나마
동물실험운영위원회를 설치한 곳은 21.6%에 불과하고 실험 지침서를 갖춘
곳도 47.7%에 그쳐, 동물보호론자들로부터 "동물실험이 아니라
동물학대"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지난 2월 ▲최소한의 동물사용
▲안락사 등 고통 최소화 ▲동물실험운영위원회 설치 등을 골자로 하는
'실험동물법안'을 발의했지만 의견이 모아지지 않았다. 서울대 수의대
박재학(朴在鶴·43) 교수는 "실험동물법안은 동물실험운영위원회의
구체적 권한을 명시하지 않고 있으며 동물복지보다는 오히려 동물실험의
과학화에 치우쳐 있다"고 비판했다.

◇환경팀
팀장=구성재기자 sjkoo@chosun.com
박돈규기자 coeur@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