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이런 나라였어? 한국 사람이 이 정도였어?" 일본인들은
월드컵이 열린 지난 한 달, 한국과 한국인 파워에 혀를 내둘렀다. 평소
한국에 관심을 갖고 있던 몇 백만 일본인들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에
전혀 관심없던 1억 일본인에게 임팩트를 줬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 컬럼을 시작할 때 나는 한-일 월드컵을 종착역으로 삼았다. 그리고
지난 주까지 총 80회를 연재했다. 2002년 6월에 폭발하도록 시한폭탄에
타이머를 맞춰놓은 기분으로 근 2년을 줄기차게 썼다. "월드컵이 끝난
뒤 한-일 대중문화계에는 깜짝 놀랄만한 변화가 일어난다"는 게 이
컬럼의 전제였다. 그렇다면 일본 시장 공략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어떤 감각으로 치고 들어가야 할까? 일본과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13년간의 내 경험이 조선일보 독자들에게 정보로서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드디어 월드컵이 시작되던 날엔 불안한 감도 있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막상 시한폭탄이 안터지면? 월드컵을 통해 한국의 위상이 일본인에게
서지 않는다면? 말할 필요도 없이 이 컬럼은 2년 동안 사기친 게 된다.
나는 내 나름대로 신념을 갖기 위해 개막하는 날 컬럼에 이렇게 썼다.
"이번 월드컵 한국 팀의 경기는 요코하마에서 딱 한 경기만 보겠다"고.
물론 난 한국팀의 결승 진출을 보지는 못했지만 3-4위전을 일본 TV를
통해 전 일본인들과 동일한 시간에 볼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한없이
기뻤다. 일본 생활 10여년 동안 한국인으로 태어난 자긍심을 이 날처럼
생생하게 느꼈던 날이 있었던가!
대중문화의 일본 공략도 이번 한국 축구처럼 공격적으로 밀어붙이면
된다고 생각한다. 일본 대중문화가 우리보다 세다고 겁먹어 수비할
생각만 하는 것 보다 한 골을 먹으면 두 골을 넣어 이기겠다는
적극적·공세적 작전이 바람직하다. 이런 신념으로 밀어붙이면
대중문화에서도 우린 일본을 석권할 수 있다.
칼럼 쓰다보니 열혈독자들의 항의도 꽤 많았다.
“이규형씨, 친일파지?”
“반일파는 아닙니다.”
“왜 그렇게 일본 칭찬하기로만 가는 거요?”
“난 사실만 썼습니다. 칭찬할 것이 많은 나라입니다.”
“그럼 왜 추악하고 비열한 것은 안 씁니까?”
“그건 내가 안 써도 많은 분들이 잘 쓰고 계시니까요.”
이 컬럼은 분명한 목적, 즉 한국과 일본의 새로운 세대들이 선배
세대들보다 훨씬 좋은 친구로 잘 지내기를 원한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반박에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지난 수십년 한국
대중문화의 강물은 일본에서 한국으로 흘러왔다. 그러나 분명한 건
지금이 물살이 역류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 시점부터라도 우리는 월드컵 축구 세계 4강이란 자긍심을
자산으로 역류의 물보라를 일으킬 수 있다. 우선 나부터 그런 역류의
물결을 보여주고 싶다.
(이규형·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