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대표가 모두 빠진 가운데 지난 5월 열린 프로축구 아디다스컵 결승전 성남-울산의 경기 장면.올해 경기당 평균 관중은 9800명으로 작년보다5000명이나 줄었다.

월드컵이 끝나기도 전에 한국 축구의 앞날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높아지고 있다. 신문, TV와 거리 전광판 앞으로 몰려 들었던 수많은
'잠재적' 축구 팬을 '진짜' 팬으로 만들지 못하면 월드컵으로 조성된
축구 붐이 거품처럼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당장 내달 7일 프로축구
정규리그가 시작되지만 팬들은 "월드컵보다 훨씬 수준이 떨어지는
경기는 재미없다"며 외면할지도 모른다. 일리가 있다.

하지만 각 구단이 매년 수십억원씩 적자를 내는 프로축구의 현실을
찬찬히 뜯어보면 경기력을 탓할 수 없다. 한국 프로축구는 10개 구단의
단일리그로 운영되고 있다. 28개팀이 1부리그(16개팀)와
2부리그(12개팀)로 나눠져 있는 일본과 비교해도 부끄러운 수치다.
지역연고제도 정착되지 않았고, 꼴찌를 해도 다음 시즌에 2부리그에
떨어지지 않는 '비정상적인' 시스템이다.

각 구단의 재정 자립도는 평균 20% 안팎으로 매년 수십억원의 적자를
내고 있다. 그나마 운영을 잘했다는 평가를 받은 포항 스틸러스의 작년
재정자립도가 26%다. 지출 110억원에 수입은 약 29억9800만원.
입장수익(7억9000만원)이 유니폼 광고(9억원)보다 적은 기형적인
수입구조다. 작년 프로축구의 평균 관중은 1만2596명. 정규리그 2위팀
안양LG를 비롯한 4개팀은 1만명도 안 된다. 대부분의 구단이 마케팅을
통해 수익을 내려는 목적보다 모기업의 홍보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버티는 현실 속에서 팬들이 원하는 수준 높은 경기력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과욕(過欲) 아닐까.

국가대표팀에게 보여준 열정의 절반만이라도 국내 프로축구에 쏟자. 거리
응원을 위해 입었던 '붉은 옷' 대신 연고 구단 팬클럽의 목도리를 들고
가까운 프로축구장을 찾자. 다음달 7일 시작되는 정규리그에는 월드컵
대표의 절반이 나온다. 골문을 지켰던 이운재(수원 삼성)와 '수비
3총사' 홍명보(포항)·김태영(전남)·최진철(전북), 세계 최고의
공격수와 당당히 어깨를 겨뤘던
김남일(전남)·이영표(안양)·송종국(부산)·이을용(부천) 등 스타가
수두룩하다. 겁없이 이탈리아 스타 파올로 말디니의 머리를 걷어찼던
이천수(울산)도 볼 수 있다.

물론 구단도 팔짱만 끼고 있어서는 안 된다. 내년이면 월드컵 스타들은
해외로 진출할 게 뻔하다. 그들을 대신할 새로운 스타들을 발굴해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야 한다. "외국의 스타 선수와 감독을 영입,
'우리'라는 틀을 깨야 할 때가 됐다"고 한 축구인은 말했다. 일본만
해도 외국인 감독 12명이 프로축구 지휘봉을 잡은 적이 있다. 축구
선진국 지도자의 효과는 거스 히딩크 대표팀 감독이 이미 보여줬다.
내국인 감독을 무시하자는 게 아니다. 지도자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국
축구가 산다. 투자도 좀더 과감하게 해야 한다. 적자를 피하기 위해
소극적으로 운영한다면, 지금같은 기형적인 프로축구 시스템은 영원히
극복할 수 없다.

정부도 축구 활성화를 지원하겠다고 선언한 이상, 세제혜택을 부여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가장 많은 팬이 있는 서울만
해도 팀이 없다. 200억원이 넘는 서울월드컵 경기장 건설비용 분담금
때문에 연고지를 이전하려는 기존 팀도 나서지 않고 있다. 정부나
서울시가 축구 발전의 의지가 있다면 이 문제부터 전향적으로 풀어야 할
것 같다.

축구협회도 주먹구구식 행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유럽
국가들은 대표팀과 프로축구의 1년 일정이 미리 나온다. 국가대표 경기로
인해 프로축구 리그가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국가대표
경기에 따라 프로축구 일정이 마구 바뀐다. 팬을 불러 모으는 스타
선수의 차출도 협회의 마음이다.

프로연맹의 한 관계자는 "국민과 정부, 기업체들이 월드컵에 보여준
열정의 절반만이라도 프로축구에 쏟아준다면 한국축구는 2006년 월드컵
때도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