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귀(屍鬼), 오노 후유미, 들녘 (전 3권)
오노 후유미는 판타지 시리즈 '십이국기'의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이
작품 '시귀(屍鬼)'는 공포소설이다. 그것도 매우 훌륭한!
전나무 숲에 둘러싸인 외딴 마을 소토바. 죽은 자를 위한 관을 만드는
것이 주업인 이 마을에 낯선 인간들이 이사를 온다. 햇빛이 들지 않도록
창을 막은 특이한 집에 살면서 해가 진 다음에야 마을로 내려오는 별난
새 이웃들. 그들이 나타나고서부터 마을에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자, 여기까지는 분명히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야기다. 새 이웃들은
당연히 시귀들이다. 시귀는 곧 흡혈귀이며 이것은 흡혈귀에 대한
이야기다. 아니, 흡혈귀 '들'에 대한 이야기다.
조금씩 마을 안으로 스며들어와 살아있는 인간들을 몰아내고 마을을
점령해가는 흡혈귀들과, 그들에 대항해 살아남기 위해 결사적으로
흡혈귀를 '살해'하는 인간들이 이 소설의 두 주인공인 셈이다.
흡혈-죽음-부활에 이르는 과정이나, 조용한 마을 전체에 죽음이
전염되어가는 과정, 죽은 자들이 산 자를 대체하고 마을을 점령해가는
과정에 대한 차분한 서술도 매력적이지만 진짜 백미는 이 작가가 집단을
다루는 방식이다.
공포를 극대화하기 위해 기괴하게 과장하지도, 흡혈귀 대 인간의 싸움을
정의와 불의의 싸움으로 몰아가지도 않는다. 그것은 단지 살아남으려는
두 종족의 처절한 생존 투쟁이다. 흡혈귀는 인간에게, 인간은 흡혈귀에게
공포의 대상이 된다.
'십이국기' 시리즈의 첫 편인 '마성의 아이'에서 교내 이지메를
형상화시켰던 오노 후유미는 확실히 집단 다루기에 능숙한 작가다.
집단의 비정상적인 광기나 죄의식 뿐 아니라 자기방어야말로 가장 소리
없는 공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세 권에 걸친 흡혈귀와 인간들의 전쟁
이야기는 너스레도 새침도 떨지 않고 보여주고 있다.
(우지연·소설가 mars.murimp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