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4일 중동 평화안을 발표한 이후 야세르 아라파트(Arafat)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수반이 생사(生死)의 기로(岐路)로 몰리고 있다.
부시 평화안 실행의 첫 관문인 ‘아라파트 축출’을 위해 부시를 비롯한 미국 외교팀은 전방위 외교를 펼치기 시작했다. 다급해진 PA는 26일 대통령 선거 및 총선을 내년 1월 10일부터 20일 사이 실시한다고 구체적인 시한을 제시하는 등, 부시 대통령의 중동 평화안으로 발생한 위기를 서둘러 진화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팔레스타인 편이라 여겼던 아랍권은 아라파트 문제에 관한 한 명확한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있다. EU(유럽연합)는 아라파트 교체에 반대했지만, 아라파트가 테러에 책임이 있다는 미국의 인식에는 공감한다고 밝히고 있다. 팔레스타인 내부도 당장은 변화가 없는 듯하지만 점차 강력한 외풍(外風)에 동요할 것으로 보인다. 부시 행정부의 의지가 확고해, 아라파트 문제로 오히려 중동 사태가 더 꼬일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 미국의 밀어붙이기
부시는 26일부터 캐나다에서 열리는 G8 정상회담에서 긴급 의제가 돼버린 중동평화안과 관련, ‘아라파트 배제’를 설득할 예정이다. 테러 근절이라는 차원에서 자신이 내린 처방의 불가피성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평화안 발표 전에 유럽과 아랍의 주요국들과 사전 협의를 거쳤던 부시는, 발표 후에도 이들 국가들과 긴밀히 협조할 것을 외교팀에 지시했다. 콜린 파월(Powell) 국무장관은 25일 이집트와 요르단, 사우디 아라비아 등 아랍권 주요국가에 부시 안의 배경을 다시 설명하고 지지를 호소했다.
파월 장관은 25일 미국 공영라디오(NPR)와의 회견에서 ‘아라파트 교체’가 미국 행정부의 확고한 정책임을 강조했다. 그는 “아라파트에게 테러를 포기하고 개혁하라며 기회를 여러 차례 주었지만 이행하지 못했다”며 “우리가 찾은 유일한 해법은 아라파트의 배제였다”고 설명했다. 파월은 조만간 중동지역을 순방, 후속 조치를 논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 곤혹스런 아랍권
아랍권은 부시 평화안의 원칙과 정신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아라파트 문제에 대해서는 외면하거나 애매한 수사(修辭)로 넘어갔다. 호스니 무바라크(Mubarak) 이집트 대통령은 “부시의 연설은 아라파트의 제거가 아니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개혁과 새정부의 구성을 요구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요르단은 부시 안이 자기 정부의 입장과 일치한다고 밝히면서도 아라파트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랍권은 부시의 아라파트에 대한 불신을 바로잡기 위해 강력한 로비를 벌였으나 결과적으로 실패로 끝나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 시험에 든 팔레스타인
아라파트의 정치적 기반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내 양대 정파인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PFLP)과 팔레스타인해방민주전선(DFLP)은 부시의 요구를 '편파적'이라고 비난했다. 아라파트 자신도 미국측 요구를 '그냥 해보는 소리'로 평가절하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아라파트를 대신할 인물이 없는 현실과 아라파트가 총선과 대선 실시를 약속하는 등 부족하지만 개혁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문제는 미국의 밀어붙이기가 팔레스타인의 강경파 여론을 증폭시킬 가능성이다. 아라파트보다 더 강경한 지도부가 출현한다면 중동의 평화는 더 멀어질 것이라고 서방 외신들은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