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의 한국―스페인 8강전은 유상철(31·가시와 레이솔)의 축구 인생에
한 획을 긋는 날이었다. A매치 100경기째. 유상철은 이날 축구선수로서는
최고의 명예라는 '센추리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그게 부담이었던 걸까? 이날 왼쪽 미드필더로 나왔던 유상철은
평소의 활기찬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했다. 후반 4분쯤 스페인 공격진의
날카로운 패스를 골문 바로 앞에서 걷어내며 한국 팀의 위기를
떨쳐내기도 했지만, 경기 초반엔 긴장한 듯 한두 번 패스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 후반 들어 무리한 공격의 와중에 옐로카드를 받기도
했다. 후반 16분 이천수와 교체되는 순간엔 "뭔가 잘 풀리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쓸쓸하게 사이드라인을 넘어섰다.

그러나 관중들은 박수를 보냈다.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이탈리아·포르투갈전의 격렬함은 유상철을 지칠대로 지치게 했고,
관중들은 그 사실을 알았다. 유상철이 조별 리그 이후 거의 모든 경기에
선발로 출전하며 월드컵 8강 신화를 만들어낸 주역이란 사실을 관중들은
알았다.

"골키퍼 포지션만 아니면 어떤 역할도 가능하다"란 평가를 받는
유상철이다. 이탈리아전 때 당초 공격형 미드필더로 투입됐다가 후반에
왼쪽 수비수로 내려 앉았듯이 그는 말그대로 '멀티 플레이어'로서 한국
대표팀을 이끌어 오고 있다. 히딩크는 그런 유상철에 깊은 애정을
표시해왔다. 작년 9월 히딩크는 그의 대표팀 합류를 위해 축구협회
관계자를 통해 그의 소속팀인 일본 가와시 레이솔에 적극적으로 협조를
요청했을 정도다.

유상철은 99번째 A매치 출전이었던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 나서기 직전
"4년 후 독일월드컵에서도 기회도 있지만 되도록이면 홈그라운드에서
100번째 출장 기록을 달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비록 그라운드
안에서 경기 종료를 맞지는 못했지만, 그의 소망을 이루었다. 후반 16분
이후 벤치에서 동료들의 플레이를 지켜보며 그는, 8년 전인 94년 3월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던 햇병아리 시절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101번째 A매치가 독일과의 2002 월드컵 4강전이 되기를 마음
졸이며 기대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