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설날만
되면 모두가 신나게 부르는 이 노래 속에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까치들의 설날이 왜 설 하루 전인가' 하는 점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객지에 나가 있던 가족들이 설날 하루 전에 귀향하기
때문일 것이다. 텃새인 까치는 낯선 손님을 반기지 않는다. 그래서
못보던 사람들이 마을에 들어설 때마다 떼지어 위협과 경계의 소리를
지르는 데 우리가 그것을 까치들의 설날 잔치로 오해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사는 아파트 바로 뒤에는 숲이 우거진 방배공원이 있어서 봄이 되면
온갖 아름다운 새소리에 기분 좋게 잠이 깬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까치들의 집단 공격이 시작된다. 결국 텃세를 견디지 못한 새들은 다른
곳으로 떠나가고, 산은 다시 시끄러운 까치소리로 뒤덮인다. 까치는 다른
새들과 더불어 살지 못하고 자기네 구역에 들어오는 새들을 쫓아낸다.
비록 상대가 독수리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많은 나라에서 까치는
미움의 대상이다. 오직 한국인들만 까치와 더불어 살며 까치를 길조로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우리
옛말도 사실은 까치의 배타성을 잘 드러내 주고 있는데 말이다.

까치와는 달리, 한국은 원래 친절한 손님접대로 유명하다. 비록 지금은
사라졌지만, 사랑방을 만들어 동네사람들에게 놀이터를 제공하고 또
지나가는 나그네들을 위한 쉼터를 마련해 주었던 것은 한국이 자랑할
만한 전통적 손님접대의 미덕이라 아니할 수 없다. 월드컵 역시 세계 각
국 사람들을 우리나라에 불러 모아 여는 문화잔치이기 때문에 한국의
손님접대 전통을 보여줄 좋은 기회가 된다.

그런데 축구에 대한 우리의 과도한 열기와 승부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자칫 외국인들의 눈에 우리를 '까치'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외국의 언론들은 한국의 응원열기를 보도하면서, 이렇게 전
국민이 열렬한 축구 팬인 나라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말한다.
전국적으로 수백만의 응원인파가 모여들고, 한달 동안이나 축구를 제외한
다른 사안들이 마비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것이다. 스포츠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남녀노소, 또는 대중과 지식인 구별 없이 모두 하나가
된다. 전국 각지에 모인 그 많은 인파도 사실은 한 데 모여서 흥겹게
놀기 좋아하는 우리의 국민성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전국을 뒤덮는 그
뜨거운 열기와 함성과 엄청난 숫자가 우리의 신바람 문화와 한풀이
정서를 모르는 외국인들에게는 심각한 위협으로, 또는 획일적 전체주의로
느껴질 수도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과연 최근 일간지에 기고한 어느 미국인은 한국인 직장 동료들과 같이
한―미 전을 보면서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었으며(안 그러면 같이
못보게 할 것 같아서), 미국이 첫 골을 넣었을 때도 환성을 지르지
못했고, 사람들이 혹시라도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고 쓰고 있다. 그는
운전하고 가던 중, 갑자기 환호성이 들리고 사람들이 태극기를 흔드는
것을 보고 한국팀의 득점을 알았고 그 순간 너무나 기뻤다고 했다.

그렇다면 혹시 우리가 손님들을 불러 놓고 본의 아니게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한 것은 아닌지, 또 마치 적군과 한 판 전쟁을 치르는
기분으로 축구를 응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돌이켜봐야만 할
것이다. 과연 우리의 영자신문들도 '전투(battle)'라는 용어를 즐겨
쓰고 있다. 그러나 스포츠는 전쟁이나 복수여서는 안 되고, 모여서
즐기는 '게임'이자 인류화합의 축제여야만 한다.

우리 축구팀은 드디어 온 국민의 염원인 8강에 진출했다. 그러므로
이제는 주인다운 예의와 관용을 보여 월드컵을 외국인들과 더불어 벌이는
사랑방 잔치로 만들어야만 한다. 배타적인 흑백 까치의 시대는 갔고,
우리는 지금 모두가 더불어 사는 무지갯빛 대화합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金聖坤/서울대 언어교육원장ㆍ영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