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전은 사투였다. 경기 내내 1―0으로 뒤지다 경기 종료직전 설기현의
슛으로 극적인 동점을 만든 한국은 달아오른 기세를 타고 이탈리아
문전을 계속 위협했다. 그러나 월드컵 4회째 우승을 노리는 이탈리아는
만만하게 물러나지 않았다. 연장 11분 한국이 얻은 프리킥을 황선홍이
강하게 깔아찼지만 이탈리아 GK 부폰이 몸을 던져 막았다. 이어 이탈리아
간판 공격수 토티가 한국 문전에서 할리우드 액션으로 페널티킥을
유도하려다 두 번째 옐로카드를 받았다. 퇴장. 상황은 한국에 점점
유리해지고 있었다. 연장 후반 황선홍이 위협적인 헤딩슛을 날렸지만
GK정면. 가투소가 한국의 수비 실책을 틈타 한국의 수문장 이운재와 1대1
찬스를 잡았지만 이번엔 이운재의 선방이었다.

결국 운명의 시간이 왔다. 경기가 끝나기 직전인 연장 후반 10분,
왼쪽에서 이영표가 높이 올려준 센터링이 안정환의 머리에 맞았다. 이
공은 이탈리아 GK의 오른쪽을 뚫고 가볍게 굴러 들어갔다. 드라마와 같은
대혈투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경기시작과 동시에 기회를 잡은 쪽은 한국이었다. 개막 휘슬이 울리고
4분 만에 이탈리아 문전에서 파누치의 반칙으로 페널티킥을 얻어낸 것.
하지만 안정환이 왼쪽으로 찬 페널티킥은 이탈리아 GK 부폰에게 완전히
방향이 읽혔다. 부폰이 몸을 날리며 쳐내 천금의 찬스가 날아갔다.

이탈리아는 빠르고 강했고 더구나 한국에 없는 현란한 테크닉까지 갖고
있었다. 한국은 전반 10분여가 지나면서 약간씩 몰리기 시작했고 결국 한
골을 먼저 허용했다. 18분 토티가 왼쪽에서 낮고 강한 코너킥을 날렸고
이탈리아 특급 스트라이커 비에리가 전광석화 같은 헤딩으로 여지없이
한국 골대 왼쪽을 갈라버린 것. 한국 최진철이 같이 떴지만 손을 쓰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과연 세계 최고의 공격수다운 멋진 골이었다.

0-1 상황에서 잠시 소강상태가 이어졌다. 한국은 주로 좌측의
이영표·설기현 콤비를 활용해 돌파를 모색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골문
앞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이탈리아의 트레이드마크인 빗장수비
'카데나치오'는 아주 견고했고 혈로(血路)는 좀처럼 뚫리지 않았다.
이탈리아 수비수들은 파올로 말디니의 지휘에 따라 유기적이고
효과적으로 움직여 한국의 공격수들의 발목을 묶었다. 하지만 한국도
이탈리아의 날카로운 반격을 강력한 미드필드 압박으로 끊으며 당당히
맞섰다.

후반 들어 한국은 양쪽 측면을 공략하며 활발한 공격에 나섰다. 히딩크
감독은 후반 17분이 지나면서 비에리를 전담마크하던 수비 김태영을 빼고
간판 공격수 황선홍을 투입했다. 패하면 모든 것이 끝인 상황에서 던진
초강수였다. 3분 뒤 수비수 김남일까지 왼쪽 발목을 접질러 나갔고
수비수 대신 공격형 미드필더 이천수가 들어갔다. 남은 것은
총공격뿐이었다.

한국이 맹공을 펼치다 실패하면 이탈리아가 비수 같은 역습으로 나왔다.
후방에서 긴 패스를 받은 비에리가 두 차례나 이운재와 1대1로 맞섰고
토티는 한국 수비수 몇 명을 제치고 문전을 위협했다.

후반 37분엔 수비의 핵심 홍명보까지 빼고 차두리를 투입했다.
붉은악마들의 함성은 점점 커져갔다. 종료 3분전 황선홍이 가운데로
투입한 공이 파누치를 맞고 중앙에서 기다리던 설기현에게 흘러왔다.
그간 한 골도 넣지 못하고 절치부심하던 설기현의 회심의 왼발 슛.
강철처럼 단단한 빗장수비 이탈리아의 골네트가 마침내 흔들렸다. 경기는
연장으로 넘어갔다. 후반 종료직전 차두리가 날린 그림 같은
오버헤드킥이 성공했더라면 연장까지 갈 필요도 없을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