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소년 피터가 추위에 떨면서 밤을 새워 제방 벽에 뚫린 바다 물
구멍을 막아 준 덕으로 온 마을 사람들의 생명을 구했다는 감격적인
이야기를 우리는 6.25 전쟁 중에 국민학교(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웠다.
이렇게 배웠던 코흘리개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설레는 마음으로
네덜란드의 어떤 제방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피터 기념관'도 없을 뿐 더러 안내자는 피터의 영웅적 이야기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이야기는 미국인 에타
오스틴 블레이스델 등이 지어낸 동화이기 때문이다. (관광안내서를
열심히 찾아보면 '피터 기념상'이 한 두 군데 있기는 하나 위의 작품을
소재로 제작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용감'이라는 덕목을
가르치고 신념을 심어주기 위해서였겠지만 미국측의 작품 안내에는 이
이야기가 '실화' 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쯤이면 왜 우리가 당황해야
하는지 충분한 설명이 된다.
피터의 이야기는 허구의 정보까지도 사실인 양 믿어 왔던 사례이지만
요즈음 해외여행 확대로 영어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지면서
이제까지 당연시되어 왔던 영어 만능주의에 대한 허상이 점차 허물어져
가고 있다. 세상에는 영어를 모르고도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내가 살았던 남미의 어떤 나라 외교관은 영어를 모르지만
러시아어, 아랍어를 잘 구사하였다. 야망을 가진 젊은이라면 장차
자기에게 필요한 영어 이외의 외국어를 한,두개쯤 더 익혀두라고 권하고
싶다.
( 정광균·200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부문 당선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