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대표팀이 월드컵 사상 첫 16강에 올라가던 14일 밤, 전국
200여곳의 '거리 응원장'엔 붉은 옷차림으로 "대~한민국"을 외치는
외국인들도 적잖았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옆골목엔 아예 'Be the
Reds'라고 쓰인 발간 티셔츠에 뿔달린 머리띠를 하고 뛰어다니는 벽안의
축구 팬들도 있었다. 월드컵을 직접 보기 위해 배낭 하나 메고 바다를
건너온 세계의 축구광들이 지금 한국 곳곳에서 한국을 만끽하고 있다.
영국인 대학생 로이드 토마스(19)와 윌리엄 채드윅(19)도 월드컵 티켓
7장씩을 들고 한국과 일본을 여행 중이다. 영국에서도 축구 경기는
쫓아다니며 본다는 이들은 6월초 일본에 먼저 갔다가 7일
아르헨티나-잉글랜드전을 보고 한국으로 왔다. 일본인 마에다
테츠지(前田 哲見·24)는 '물가가 더 싼' 한국에서 월드컵을 보겠다며
건너왔다. 호주인 스말틴 데빌(30)은 이달초 회사에 3주 휴가를 내고
왔다.
이들이 묵고 있는 곳은 서울 삼청동의 민박집 '더 네스트'. 지난 11일
이곳 거실에는 8명이 모여앉아 카메룬-독일 경기 TV 중계를 보고 있었다.
쉴새없이 축구 얘기가 오갔다. "한국 참 잘하지" "브라질이나
잉글랜드가 우승하겠지?"…. 이날 낮 인천에서 열린 덴마크-프랑스전을
보고 온 로이드는 "프랑스를 응원했는데 몹시 기분이 안좋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이 3층집엔 방이 5개 있다. 1인 숙박료 1만8000원에 한방에서 6명이 같이
잔다. 세계 8개국에서 날아온 외국인 숙박객 20명 중 월드컵 배낭족이
절반 정도다. 이 중 영국인 4명은 붉은 악마 빨간 티셔츠도 갖고 있었다.
한국-미국전이 있던 10일 낮에 광화문 사거리에서 사 입었단다. 그 때
얘기를 하다 몇몇이 주먹을 위로 치켜 올리며 "대~한민국!"이라고
정확한 발음으로 외쳤다.
"나도 알아. 대~한민국. 그런데 그 게 무슨 뜻이지?" 벨기에인 폴린
베르해스트(여·21)가 묻자 윌리엄이 "The republic of Korea!"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일본보다 한국사람들이 훨씬
열광적(passionate)"이라며 "한국 사람들은 바로 옆에 앉아서 서로
다른 팀 응원해도 싸움이 안나는 게 신기하다"고 했다. "한국사람들은
세상에서 제일 애국적인 것 같아요. 응원하면서 나도 한국이 정말
좋아졌어요."
갑자기 로이드가 "난 어제 개고기 먹어봤다" 하니 옆에서들 눈을
둥그레 뜨고 "정말? 무슨 맛이야?"라고 물었다. "양고기랑 비슷한데
더 맛있어."
화제가 축구에서 먹는 얘기로 넘어갔다. "테이블 위에서 불 피우고 갈비
구워 먹는 게 최고지." "물가도 싸고 맛있어서 난 한국에 또 올
생각이야"…. 덴마크에서 클럽 DJ를 하다 한국에서 2개월째 휴가를
보내고 있는 영국인 케빈 존스(27)는 "길거리에서 파는 닭꼬치가 제일
맛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불편한 점은 뭘까? 2~3명이 "영어가 안통해서…"라고 했다. 케빈이
"하지만 길거리에서 지도를 보고 있으면 달려와서 '도와줄까요?' 묻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자 마에다가 "자원봉사자들 봤어? 영어, 일어,
중국어에 불어, 포르투갈어 봉사자까지 있어"라고 맞장구를 쳤다. 샘은
"서울에서 지하철은 편하지만 버스는 노선도가 한국어로만 돼있어서
도저히 탈 수가 없다"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거실이 소란스러웠는지 11시가 넘어 침실에서 미국인 메리
말라(여·56)가 나왔다. 일 때문에 3개월 전 한국에 온 그녀는 "원래
축구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 친구들 때문에 요즘엔 밤에도
즐겁다"고 했다.
12시가 되자 이들은 홍대앞 바에 간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은 몇시에
자는 걸까? "밤엔 안자요. 한국에서는 밤에 더 재미있거든요. 술 취한
사람이 너무 많은 게 희한하지만, 같이 취하면 상관 없어요." 케빈은
"한국사람들은 술 취하면 정말 웃긴다(funny)"며 큰 소리로 웃었다.
네스트 근처엔 '게스트하우스 코리아'가 있고 광화문위 '유서 깊은'
배낭족 숙소 '대원여관' 도 월드컵 배낭족으로 소란스럽다. 세계
어디서도 본 적 없던 30만 인파의 '광화문 카니발'에 함께 열광하는
특혜를 톡톡히 노린다.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과 세계가 만나는 또하나의
이색 '국제(國際)' 무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