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감, 열정, 도취, 환희. 대한민국 국민 4700만명의 심장(心臟)에서
한꺼번에 에너지가 용솟음친 밤이었다. 마음의 에너지를 전력(電力)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 지난 14일 밤 대한민국은 지구를 통째로 환하게
밝히고도 남을 발전소였다. 5살배기 아들을 들쳐업고 광화문에 나와
한국팀을 응원한 김은하(33·주부·강서구 가양동)씨는 "아이에게
열광이 무엇인지, 애국심이 무엇인지 꼭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경기 시작 2시간 전에 오고도 자리를 잡지 못해 서있는 사람들이
수두룩했지만, 거리 응원석을 가로지르는 폭 50㎝짜리 통행로에는 누구도
앉지 않았다. 응원인파 스스로 고안하고 준수한 법(法)이었다. 수
맥라건(31·영어강사·남아공)씨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질서정연하게, 이렇게 뜨겁게 한덩어리가 되는 광경은 난생 처음"이라며
"내 인생에서 가장 압도적인 순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15일 대한민국은 언제 그랬나 싶게 싸늘하게 식었다. 16강전 첫
경기인 독일―파라과이전이 열린 제주 서귀포 경기장은 전체 4만2000석
가운데 1만7000석이 비었다. 입장권 판매를 둘러싼 온갖 잡음을 감안한다
해도 40% 가까운 좌석이 공석으로 남은 그 광경은 참으로 무안스런
것이었다. 한 영국 기자는 "한국인은 한국팀만 사랑하는 것 같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월드컵은 잔치다. 잔치상을 차리고 손님들을 청해들인 매력만점의
주인장이 바로 우리다. 전시동원(戰時動員)이라도 하듯 전국민이
축구광이 될 필요는 없지만 '남의 나라 경기'라고 모른척 무시하는
것도 매너는 아니다. 한국전이 벌어진 지난 4일, 10일, 14일은 우리들의
잔치였다. 남은 나날, 손님들도 잔치 기분을 낼 수 있도록 '주인 노릇'
한번 제대로 해내면 어떨까. 이제 월드컵은 경쟁이 아니라 축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