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밤 한나라당은 들뜬 분위기였지만, 끝내 환호하지는 않았다.
광역단체장 16곳 중 11곳에서 승리하고, 수도권 기초단체장마저 석권하는 것으로 나타나자 사무처요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캔맥주로 승리를 자축했다. 그러나 당사 10층 상황실에서 개표상황을 지켜보던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와 서청원(徐淸源) 대표 등 당 지도부는 애써 기쁨을 감췄다.
당소속 후보들의 선전에도 박수 한번 치지 않던 이 후보는 밤 10시쯤 이명박(李明博) 서울시장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자 처음 박수를 치는 등 조심스러워했다. 이 후보는 “국가운영을 제대로 못하면 국민의 마음이 떠난다는 것을 매섭게 보여준 선거였다”며 “두려움과 함께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후보는 “국민의 뜻을 받들고 국민과 함께하는 국민우선의 정치, 국민대혁신과 국민대통합의 정치를 펼치겠다”고 말했다.
서 대표는 “우리의 승리는 국민의 승리고, 겸허한 마음으로 국정에 임하라는 국민들의 목소리”라며 “앞으로 있을 원구성 협상 등에서 자유투표제 등 민주당측의 요구를 충분히 수용할 것”이라고 했다. 남경필(南景弼) 대변인은 “자만하지 않고 더욱 열심히 일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13일 지방선거에서 대패(大敗)하자 당 전체가 충격에 빠졌다. 수도권 선거에서 전패하고,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고전하자 “과거 평민당 시절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는 당초 이날 오후 6시 당사 1층 선거상황실에서 방송사의 출구조사 보도를 지켜볼 계획을 바꿔 한동안 8층 집무실에 머물렀다.
노 후보는 이날 저녁 7시쯤 기자들에게 "선거에서 질 수도 있는 거다. 93년 프랑스도 집권당이 참패를 했다"고 말하며 당사를 빠져나간 후 돌아오지 않았다.
한화갑(韓和甲) 대표는 상황실에서 침통한 표정으로 “전투에서 졌다고 전쟁에서 진 것은 아니다. 왕건도 견훤에게 번번이 지다가 결국 최후에는 이겼다”고 말했다가, 기자실을 찾아 “국민들의 뜻을 겸허히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당직자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으며, 일부 여직원들은 “어떻게 이럴 수가…”라며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민주당 일부 당직자들은 당이 공황상태로 빠져들 것을 우려하면서 노 후보와 지도부의 책임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저녁 늦게 민주당 일각에서는 한 대표가 사태수습을 위해 대표직을 사퇴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으나, 한 대표측은 즉각 부인했다. 민주당은 상황판 당선자 이름 옆에 붙일 조화(造花)도 상당수 마련했지만, 한 관계자는 “꽃이 많이 필요할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민주당의 선거 참패에 대해 공식적으로 아무런 입장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조순용(趙淳容) 정무수석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당적이탈 이후 천명한 정치불개입과 공정한 선거관리 약속이 지켜졌다”고 말했다.
자민련 서울 마포당사는 13일 말을 잃었다. 오전부터 초조한 분위기였던 자민련은 오후 6시 발표된 방송사 투표자조사 결과 충북지사 선거에 완패한 데 이어 기대를 걸었던 대전시장 선거에서조차 한나라당에 패하는 것으로 나타나자 당사는 깊은 침묵에 빠져들었다. 당직자들은 침통한 표정 속에 당의 존립을 우려했다.
김종필(金鍾泌) 총재도 개표방송을 보기 위해 5시45분쯤 당사 지하 1층에 마련된 투·개표 상황실로 내려왔으나, 굳은 얼굴을 풀지 못했다. 김 총재는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기 직전인 5시50분쯤 저녁약속이 있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당사 5층의 총재실로 올라가 혼자 방송을 지켜본 뒤 당사를 떠났다. 김 총재가 상황실을 나가자, 한 여성고위당직자
는 "총재까지 떠나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 총재는 이날 당사에 돌아오지 않았다.
한나라당의 압승을 알리는 방송을 말없이 지켜보던 정상천(鄭相千) 선대위원장 등 당 수뇌부도 30여분 만에 모두 자리를 떴다. 유운영(柳云永) 대변인 직무대리는 밤 11시30분 긴급성명을 통해, “국민의 심판을 석고대죄하는 자세로 수용한다”고 말했다.